-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2000년 10월 23일)
<고향으로의 불가능한 회귀>
장석남의 시를 읽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홍정선의 해설을 따라 읽어나가자, 어느 정도 갈피가 잡혔다. 홍정선은 장석남의 시가 “그곳”(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어휘)을 향하는 몸짓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 지상에서 확실한 주소를 갖지 못한 ‘그곳’은 장석남의 언어 표현을 빌면 거리가 ‘먼’ 곳이다. (109)
장석남의 시 속에서 우리가 순수한 유토피아로서의 ‘그곳’ 그 자체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곳’을 이야기하는 언어들의 주소는 찾을 수 있. . .다. 그가 구사하는 그 언어들은 자신의 출생지와 성장지의 빛깔과 이미지를 잃지 않은 채 우리들에게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의 근처에는 접근해볼 수가 있는 까닭이다. (111)
홍정선의 이러한 해설은 장석남의 시 읽기를 조금은 손쉽게 해주고, 또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장석남의 시가 가지는 매력을 나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과 언어적인 감각에서 찾아 본다. 이 말은 사실 추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정도로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홍정선을 인용해 보겠다.
그의 시가 이야기하는 삶의 쓸쓸함, 정처 없음,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이러한 정서 저편에 있는 어떤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 모든 것들은 실상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인데 그것들을 장석남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그의 시어들이며, 그 시어들은 그것들을 사용하는 사람의 출생지와 성장지의 내력들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111)
우리는 [그의 시의]. . .이미지들을 통해 그의 고향으로 짐작되는 그 서해 해상의 한 가난하고 외로운 섬에 이를 수 있다. 시의 화자가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짐작되는 그 도서 지방에서 화자는 배고팠었고 외로웠었으나 어쨌건 행복했었으며, 자연과 친화하고 교감하는 충일한 서정적 삶 역시 맛볼 수 있었다. (115)
장석남의 시가 보여주는 어릴 적 고향의 이미지가 그의 시를 이끌어 가는 원천적인 힘이라고 했을 때, 그 힘이 우리에게 교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그의 시어에 있다는 말일 터인데, 그렇다면, 개개의 시에서도 이러한 지적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저 입술을 깨물며 빛나는 별
새벽 거리를 저미는 저 별
녹아 마음에 스미다가
파르륵 떨리면
나는 이미 감옥을 한 채 삼켰구나
유일한 문밖인 저 별
--<별의 감옥> 전문
첫 시는 항상 분석을 빠트릴 수가 없는데, 이 시가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별을 감옥이라고 보는 것은, 자신이 그 별에서 떠날 수 없기 때문일 터인데, 그 다음 연에서는 별이 ‘유일한 문밖’이라고 해서 나(독자)를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내 안이 감옥이고, 감옥이 유일하게 문밖이란 말일까? 아리송하다.
누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봄 햇빛 너무 뻑뻑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서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엔가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엔 늘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무도 없는데
아궁이 앞이 환하다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부분
비교적 명료한 이 시는 장석남 시의 어조를 대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비극적이다. 그래서 늘 초월을 꿈꾸고, 그 꿈이 현실을 버팅겨 나가게 해준다. 초월은 다른 시에서는 대체로 과거로의 회귀 양상을 보인다.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그리운 시냇가> 전문
무릉도원의 고사를 바탕으로 한 듯한 이 시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마을을 환히 적시리라’라는 곳이다. 나와 당신의 아기가 꽃이 되어 사람들이 못 오는 골짜기에서 꽃잎을 흘려보낸다. 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이상향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장석남에게 있어서 그런 이상향은 얼마간은 ‘기억 속의 고향’이다. 그는 자신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별’을 품지 안고서는 살아갈 수도 없다.
잎 가지지 못한 삶이 서 있고
사람 없는 집들이 즐비한 길 위로
밭이 있고 포도나무가 있다
포도나무는 밭을 포도밭으로 만들고 있지만
길들이 모두 집에 와 닿는저녁이 와도
빈집들은 이 마을을
빈 마을 이외로는 만들지 못한다
잎 가진 삶이 다 유배당한
겨울 洞口
--<겨울 洞口> 전문
현실에 있어서의 장석남의 고향 내지는 시골 마을은 빈집으로 가득찬 그런 쓸쓸한 곳일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석남은 더욱 더 기를 쓰고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일까?)
진흙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의 표정을
알 수는 없으리
한없이 뒤로 걷는
내 발자국에
나비 한 마리 피어오르는 것
아무도 보지 못하리
--<내 발자국의 표정> 부분
장석남의 시가 우리에게 특히 울림을 주는 부분은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은 섬세한 시각이리라. 과거는 한 번 흘러가버리면 회상할 수 있을 따름인 것이다. 거기에서 아름다움이 피어오른다 해도 우리는 보지 못하리라.
솔직히 말해, 장석남의 시를 읽고, 나름대로 시를 정리해 내기는 쉽지가 않다. 이 작업은 다시 한 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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