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 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 문학사상사(040803)
([독서 일기] 쓰는 것을 게을리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전환점으로 한 권 한 권, 착실히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오월 MT를 마치고,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김소월을 다시 읽고, 그 다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이형기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모난 데 없이 절제된 창작 안내서이다. 또 입문서이기 때문에 논의가 깊이 있게 전개되기 보다는 일반적인 수준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시인인 만큼 이론적인 공부가 그다지 깊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인용된 시나, 논의의 전개는 대체로 적절하다.
다음 구절이 이형기의 시관의 핵심이자, 내가 시창작할 때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체라고 보여 진다.
한마디로 현실적 경험의 초현실적 재구성이라 해도 그것을 막상 실천에 옮길 때는 실로 무수한 정도의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이를테면 현실의 경험으로부터 한걸음만 떨어진 재구성과 몇천킬로, 몇만킬로 멀리 떨어진 재구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말한 T(Tenor)와 V(Vehicle)간의 거리의 문제이다.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재구성의 결과는 이해하기 쉽지만 동시에 그만큼 신선감을 잃게 된다. 반대의 경우는 물론 그 반대여서 이해는 어렵지만 사람을 놀라게 하는 효과, 즉 충격은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서야 할 자리는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지점일 것인가. 수학의 방정식과 같은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일반론을 펴자면 쉬운 이해보다 충격 쪽에 좀더 무게가 실릴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만들어진 은유는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얼핏보면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진폭이 큰 상상력에 의하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133)
*시는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주로 표현하는 문학 양식이다. 그러니까 시는 그 감정 속에 용해된 우리의 조건 전부를 통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고 그리하여 그것을 표현한 것이라는 대답이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시는 사물과 세계를 가장 인간적인 눈으로 조명하고 이해한 결과인 것이다. (26)
*시는 감정표현을 내용의 기본 특성으로 하되, 사물과 세계에 대한 지적 분석과 비판정신도 아울러 수용하는 문학양식인 것이다. (28)
*. . . 시를 쓰는 그 마음을 폴 발레리는 <우주적 감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주적 감각이란 뭐 달이나 별을 바라볼 때와 같은 느낌이란 뜻이 아니라 현실적 이해를 초월한 의식으로 사물을 관조할 때 얻데 되는 느낌을 발레리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때는 사물이 우주적 질서를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본질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우주적 감각>이란 말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34)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것은 <우주적 감각>을 마비시키는 현실적 이해의식과 상식과 고정관념인 것이다. (36)
*시가 모두 존재의 의미를 새로이 조명하고 있다는 것은 언어의 창조적 인식 기능을 시의 본질적 속성으로 본 하이데거의 말을 뒷받침하는 일이라 하겠다. (53)
*나의 경우는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얻는다. 하나는 지난 랑에 적어둔, 지금의 이 시와는 관계가 없는 다른 시의 종자와 노트를 펼쳐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술을 마시는 일이다. 그러면 언제난 그렇지는 않지만 막혔던 생각의 벽에 구멍이 뚫리는 수가 있다. (61)
*(그렇다면) 표현과 설명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의 단서를 얻기 위해 우리는 한폭의 그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늙은 소나무 한 그루를 그린 그림이라고 가정하자. 가정인 만큼 다른 사물로 바뀌어도 그만인 그 소나무는 우리에게 다만 그려진 그대로의 제모습을 보여만 줄 뿐, 그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와같은 소나무를 그려놓은 그림은 그 소나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소나무 자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소나무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물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그 소나무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를테면 독야청청하는 <절개>라든가 세속을 벗어난 <초월의 정신> 같은 의미가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 감상자의 해석에 의해 드러나는 의미지, 소나무가 직접 그것을 그렇게 설명해 주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최대한으로 억제하고 그냥 무엇인가를 보여만 주겠다는 태도를 취할 때 우리 앞엔 표현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그것은 보여준 그 무엇이 무의미함을 뜻하는 태도가 아니라 보는 이에게 그 의미의 해석을 맡긴다는 태도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보여준 그 무엇의 의미의 해석을 보여준 사람이 보는 이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취할 때 설명이 생겨난다. 바꾸어 말하면 표현자가 표현물의 의미를 직접 밝히는 것이 설명인 것이다. (65-6)
*영국 경험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란시스 베이컨은 상상력을 <자연이 분리해 놓은 것을 결합시키고, 자연이 결합해 놓은 것을 분리시키는 힘>이라고 재미있게 규정하고 있다. (72)
*한마디로 현실적 경험의 초현실적 재구성이라 해도 그것을 막상 실천에 옮길 때는 실로 무수한 정도의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이를테면 현실의 경험으로부터 한걸음만 떨어진 재구성과 몇천킬로, 몇만킬로 멀리 떨어진 재구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말한 T(Tenor)와 V(Vehicle)간의 거리의 문제이다.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재구성의 결과는 이해하기 쉽지만 동시에 그만큼 신선감을 잃게 된다. 반대의 경우는 물론 그 반대여서 이해는 어렵지만 사람을 놀라게 하는 효과, 즉 충격은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서야 할 자리는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지점일 것인가. 수학의 방정식과 같은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일반론을 펴자면 쉬운 이해보다 충격 쪽에 좀더 무게가 실릴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만들어진 은유는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얼핏보면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진폭이 큰 상상력에 의하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133)
*비판은 감정이나 정서보다는 지적인 의식에서 우러난다. 따라서 아이러니를 이용하는 시는 주정(主情)이 아니라 주지적 성격을 띠게 된다. 주지적 성격의 강화는 현대시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에 아이러니 곧 현대적인 시의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64)
*아이러니가 진술 자체는 모순이 없는데 반해 역설은 진술 자체가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65)
*시의 리듬을 우리말로 운율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운과 율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영어로는 전자를 라임(rhyme), 후자를 미터(meter, metre)라고 하는데, 개괄적으로 말하면 전자는 같은 소리의 반복, 후자는 언어가 갖는 그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의 주기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177)
*시를 포함한 모든 문장에는 어떤 내용이든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은 물론 단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결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단순한 내용은 그것을 구태여 문장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문장의 내용은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이룬다. 커다란 덩어리인만큼 그 속에는 또 몇 개의 작은 덩어리가 들어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문장을 열차로 비유하고 있다. 기관차, 객차, 식당차, 전망차, 화차 등이 연결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열차이다. 여러 개의 작은 내용의 덩어리가 모여서 보다 큰 내용의 덩어리를 이루는 문장은 아닌게 아니라 열차와도 같다. (188)
*시는 주제의 전달수단이 아니라 주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완결된 표현물인 것이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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