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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이인화, 인간의 길 1-3, 살림(080504)

by 길철현 2016. 12. 7.

*이인화, 인간의 길 1-3, 살림(080504)


이인화의 이 소설은 미완인 채로 그 후속편이 나오지 않았고, 이 작가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는다(컴퓨터 오락 쪽의 시나리오를 쓰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그의 말로는 소설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고 했던가?

어쨌거나, 이 작품은 허정훈이라는 가명이긴 하지만 실존인물인 박정희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이고, 그래서 작품으로 재현되는 순간순간의 감정은 모두 이인화 자신이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것이긴 하지만 큰 사건들은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은 나아가서는 작가가 어떤 역사의식을 지니고 작품을 써나가는가, 작가의 역사 해석은 어떤 방향인가라는 문제를 불러오는데, 여기에 이인화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그에게는 우리의 삶이 혼란스럽듯이, 삶 가운데 우리가 취하는 행동 또한 뚜렷한 기준이나 원칙이 제시되지 않는다. 있다면, 그것은 맹목적이라고 할 생존의지정도라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가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겪던 10년 전에 발표된 이 세 권의 책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경제를 부흥시켰던 독재자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등에 업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나는 인간 박정희를 느끼기 보다는, 인간 이인화를 느꼈고, 또 핍박과 폭력이 난무하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그래서 소설이 후반부로 갈수록 통속의 늪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점은 김훈의 [칼의 노래]가 보여주던 그 엄숙성과 강인함, 간결함과는 대비되는 작가의 미숙함이라고 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허정훈은 어려움이 닥치면 언제나 죽음을 각오하지만, 또 상황은 언제나 그를 죽음을 넘어서게 만드는데, 그 과정이 다소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인화의 창작 방식은 김원일의 그것을 생각나게 하면서도, 보다 폭력적이고, 보다 음울하다(때때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인화는 고문 장면이나, 폭력 장면의 묘사를 통해 자신의 공격성을 배설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한 편의 소설을 써나가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작품에 대한 비난은 조심스러워야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보자면, 한 편의 글이 살아남으려면 여하한의 담금질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