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수, 한 정신과의사의 실존적 자기분석, 청하(100130-31)
[단상]
이 책을 읽은 지가 벌써 3개월도 더 지났기 때문에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큰 테두리에서 볼 때, 이 ‘자서전’은 한 인물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6*25 그리고 그 이후의 산업화 시대라는 우리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 나온 한 인물이 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찾아 밟아나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한 기수의 삶에서 똑똑하면서도 시대적인 모순을 안고 살아야 했던 아버지와, 또 여섯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일단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신경증적인 증상으로 학업이나 교우 관계에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또 거기다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헤쳐 나가야 했음에도, 현실적으로는 그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서 자기의 길을 향해 나간 한 인간을 볼 수 있다. 조혼과 그것이 가져온 불행, 사범학교 선생에서 일본으로 유학, 의사가 되어서도 끼니를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형편, 외과 의사에서 다시 정신과 의사로, 39살의 나이에 미국 유학을 결심하는 의지와 그것을 밀고 가는 추진력과, 주변의 도움.
이후 그는 정신과 의사로 활동을 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의 수용에서 그것의 비판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 다음에는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의 영향을 받아, 그것을 환자의 치료에 큰 기준으로 삼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건강의 악화로 폐를 하나 잃고, 천식, 당뇨, 협심증 등을 앓게 되었으며,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을 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그의 심정을 쓴 글을 보면 그의 인간적인 확고한 의지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좀더 부드럽게 겸허하게 나의 숙명을 받아 들이고 그 숙명에 끝까지 나의 뜻을 담아야겠다는 것을 한쪽 눈을 잃은 댓가로 얻게되었다. (370)
그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이고, 자신의 꿈을 향해 신명을 바쳐 걸어 나간 인물이지만, 동시에 시대의 산물이었다. 또 그의 사상에 있어서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여러 가지 한계 때문이겠지만, 별다른 독창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우리는 아무래도, 준엄한 자기비판 보다는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내가 현재 해 볼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 또 의지를 가지고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 등을 절실히 깨달았다.
(언어가 언제나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무는 것이 때로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부단한 시도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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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나 자신의 정신분석을 쓰게 된 동기와, 프로이드적 분석에서 실존분석으로 발전해 나간 경위
-정신의학을 공부하면서 나를 관찰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성격상의 결함이나 건설적인 좋은 면의 모두가 부와의 관계에서 나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23)
II. 부의 생애와 그가 내게 끼친 영향
-그[아버지]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창조적인 삶이 인간에게 있어서 근원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42)
-대구에서 10여 년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문명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자기 아들을 갖게되면 그 아들에게는 신학문을 교육받게 하리라 굳게 마음 먹었음이 틀림없다. (64)
-나는 이때 16세에 결혼하여 이미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69)
III. 나의 생활사와 나 자신에 대한 분석
-나의 한쪽 폐는 수술로 다 없어졌고 천식으로 하루에 여러번씩 여러가지 약을 먹고 또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협심증 증세가 일어나서 심한 고통을 받을 때도 있다.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으로 당뇨병이 오래 전부터 와 있으며 얼마전 백내장 수술로 오른쪽 눈은 실명되었다. (82)
-모는 삼십을 얼마 넘기지 않은 매우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97) (여섯 살 때)
-5학년으로 월반하여 산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나는 야뇨증을 일으켰다. (111)
-축축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에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했던 야뇨증에서 해방된 것은, 인간 관계에서 좀 자유스러워지고 건설적인 능력을 얻게 되었고 이렇게 얻기 시작한 힘들이 나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음을 자각시켰으며 앞으로의 전진을 펼쳐 나갈 수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129)
-경성사범 2년, 국민학교 교사 4년
-싸르트르, 우리 인간은 자기가 만들어 나가는 존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205)
(실존 철학에서는 개인의 자유성,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free floating anxiety
-외과 의사
-나의 참된 생애개 시작된 것이다. 나의 앞이 환히 열리는 듯한 기쁨에 가슴은 설레이고 있었다. (268) (미군 야전 정신과 병원에 파견 교육을 나가면서)
-프로이드 이론이나 치료가 환자의 가능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나 무의식의 심층심리학 편중은 결국 인간을 기계화하는 경향을 만들어 내었다. (280)
-(내 자신의 경험들을 검토해 볼 때) 환자와 치료자 간의 인간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 환자의 무의식을 파헤치는 작업이 치료의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00)
-바로 의사들의 현상학적 태도의 결여가 그 하나였다. 의사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바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치료 과정을 지배하였고 나의 상태나 내가 호소하는 고통은 사실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352)
-인간은 피동적으로 이 세상에 적응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를 초월하고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이다. (364)
-프로이드도 인간을 영적인 존재 또는 보편적인 가치 기준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으로 있는 그대로를 관찰, 이해하려는 혁명적인 일을 개척하였다. 프로이드의 이 태도와 작업 때문에 몇 동료들은 그를 떠났으며 당시의 사회로부터도 말할 수 없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과학적인 태도로 프로이드는 고독한 길을 계속하여 많은 영구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전부 다 타당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지만, 인간 심리나 심리학적 치료에 많은 가치있는 업적을 남기고 있듯이 실존주의 철학도 철학으로서 여러면으로 비평과 단련을 받고 있지만, 인간의 실존뿐만이 아니고 심리학적 이해에도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366)
-나는 좀더 부드럽게 겸허하게 나의 숙명을 받아 들이고 그 숙명에 끝까지 나의 뜻을 담아야겠다는 것을 한쪽 눈을 잃은 댓가로 얻게되었다. (370)
IV. 몇개의 나의 꿈의 분석
-나의 현재의 입장은 무의식의 심층 심리학에서는 떠났으며 무의식은 있어도 없어도 무방하다는 견지를 갖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나 치료에 있어서는 내 자신 무의식 영역의 심층 심리학은 배제하고 있다. (381)
-현재의 정신분석 치료에 있어서나 일반 정신치료에 있어서 꿈을 전처럼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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