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그림자, 한길사(0711)
[감상]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개념을 들고 나와 인간의 정신세계를 새롭게 보도록 촉구하고, 자신의 학문을 ‘정신분석’(Psychoanalysis)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이 정신분석은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문학*예술*철학 등 다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로 자신의 이력을 시작한 융은 처음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적극 동참하여,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던 1910년에는 ‘국제정신분석학협회 회장’이 되었다. 하지만 융은 프로이트와 견해 차이를 보이며 자신의 심리학을 ‘분석심리학’으로 명명하며 정신분석학과 결별하고 말았다.
한국 내 분석심리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이부영의 이 책은 융의 무의식의 몇 가지 개념 중 의식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림자’ 개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그것이 폭넓게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나 종교 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그는 그림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41)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의문점 중의 하나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그렇게 분열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은가 하는 부분이다. 이 점은 [인 트리트먼트]라는 드라마에서 상담자 중의 한 명이었던 공군 조종사 앨릭스의 아버지가 제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림자를 의식화해서 우리의 파괴적이고 잔혹한 측면을--전쟁이나, 나치의 유태인 학살, 일본군의 난징 학살 같은 것--다스릴 수 있는 것이 낫다, 라고 말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에 뚜렷한 답은 없는 듯하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이렇게도 나아가보고 저렇게도 나아가볼 뿐.
물론 이 책은 융의 원전도 아니고, 또 이부영도 분석심리학을 소개하는 측면에서 쉽게 글을 풀어갔기 때문이기는 하겠으나, 융의 사상체계는 이 글에서 받은 인상으로 볼 때에는 그 근거가 좀 미약하지 않나 한다. 인간의 삶에 보편적인 어떤 원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프레이저나 프라이 등에서 강조되었던 바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환원주의의 위험도 있다. 또 그러한 원형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현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남는다.
이부영이 보여주는 융의 사고방식은 이분법적이고, 또 자기중심적이고, 언어가 지닌 한계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융의 사유체계에 대해서 너무 섣부르게 비난의 말만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프로이트를 배반했다는 것에 대한 나의 불만이 투사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삶이라는 현상 또는 의문 앞에서 인간은 저마다의 답을 던진다. 융에 대해서는 언젠가 또 다른 시간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이 나에게 준 핵심적인 말은 아마도 다음이 될 듯하다.
그림자의 인식은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그것은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고 ‘삶의 고통’을 통해서 만날 수 있으며 그 고통 속에서 의식화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183)
<인용>
-무의식은 모든 정신현상과 문화현상에 표현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자기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의식화해 가는 작업이다. (25)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41)
-자기원형이란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그 사람의 마음을 통일하여 숨은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도록 하는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47)
-언제나 개인적 * 사회적 재앙은 우리 안에 무서운 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일에 달려 있지 않고 그것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81)
-융: 광신은 내적 의혹에 대한 발작이다. (131)
-융: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너무 지나치게 인간의 어두운 면, ‘그림자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 (170)
-그림자의 인식은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그것은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고 ‘삶의 고통’을 통해서 만날 수 있으며 그 고통 속에서 의식화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183)
-융: 뻔뻔스럽게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194)
-종교는 결코 프로이트가 본 것처럼 본질적으로 소아의 강박신경증 같은 것, 마르크스가 주장한 아편과 같은 것이 아니고 종교적 인류로서의 인간의 마음의 근원에서 생겨난 것이며 의식으로 하여금 자아를 넘는 커다란 신화적 원형층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실현에 기여한다고 융은 보았다. (258)
-탐*진*치, 삼독과 6도를 극복하는 계*정*혜*팔정도에서 제시하는 마음의 자세 속에는 그림자의 수용과 표현보다는 의지의 집중과 투철한 지적 이닉을 통한 관조의 자세가 더 많이 강조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281)
-나는 홀로 남들과 달리 생의 근원을 소중히 여기노라. (297) [도덕경]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그림자를 통찰하지 않으면 집단적 투사는 해결되지 않고 집단의 성숙은 기대할 수 없다. (302)
<BS>
--이분법적인 분류의 측면. 단순화.
--무의식, 그림자에 대한 인식이 힘들고 하기 싫은 작업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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