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건,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푸른숲(2011)(110718)
[독후감](0719)
최병건의 이 책은 정신분석의 개념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그 개념들에 해당하는 스물두 편(맞나?)의 영화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지를 해명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최병건 선생에게 2년 가까운 시간 강의를 들었고(제대로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 이 책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다룬 영화들 중 몇 편은 강의 중에 다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은 상당히 친숙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신경과학 쪽의 공부가 예전보다는 좀 더 나아갔다는 것, 그리고 형식적으로 까다로울 수 있는 책을 읽기에 어렵지 않게 구성해나간 솜씨(정신분석적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부분도 꽤 있을 듯) 등에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부영의 책도 그렇고, 최병건의 책도, 그 독자층이 일반 대중이기 때문에 그렇긴 하겠지만, 좀 더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르게 보자면, 나의 지식수준이 좀 더 어려운 책에 도전해야 할 그런 단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 현재 초미의 관심사 중의 하나인데, 정신분석적 관점이전에, 나에게는 언어와 마음의 상관관계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대체로 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그 마음이라는 것은 크게 보아 무의식의 움직임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무의식이 우리의 마음의 움직임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의식의 역할이 더 강조되는 면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기도 하고, 또 나도 동조하는 부분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내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계속 혼란스러운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 내지는, 우리가 언어적으로 외부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언어는 외부세계에 대한 해석이고 그렇기 때문에 편향성이나 방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가 언어를 통해 총체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보다 더 뛰어나거나 정확하다는 외부적인 근거는 없다. 우리 생각에 그렇게 보이는 것을 선택할 뿐이다. (뒤로 오면서 이야기가 어려워지고 나 자신도 혼란스럽다.)
최병건의 이 책은 마음에 관한 책이면서 또 동시에 영화에 관한 책이어서, 한 동안 가까이 하지 않았던 영화들을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몬스터], [공각기동대]를 이 책을 읽으면서 보게 되었다. 영화는 우리 인간 삶의 극한적인 모습들, 혹은 그 심부를 끌어올려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있을 법한 50년대 미국 가정의 모습이지만. 이 책에서 이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왜 시대 배경은 뺐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몬스터]도 80년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부분도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정신분석이라는 것에 대한 불만 중의 하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간도 변화하는 것이라면, 분명 시간이라는 것은 중요한 요소일 텐데, 그것에 대해 둔감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집중과 생각과 공들임이 필요한데, 자꾸만 배설로 흘러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단 거기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나는 좀 더 대중적이고, 좀 더 정돈된 최병건을 만났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가 아는 최병건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 느낌의 핵심에는 이 세상이라는 난장판에서 자신은 빠져있는 그 느낌이다. 그 느낌은 별로 좋지 않은 것이다. 왜 나도 일원임을 왜 나도 아프고 욕하고 싶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지, 그것이 정신분석 수련의 결과인지, 정신분석은 그렇다면 비인간적이지 않는가, 하는 그런 느낌. 이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지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 (1458)
<인용>
<머리글> 마음에 성역은 없다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7)
(융의 그림자 이야기와 같은 맥락)
*1장-마음이 당신을 휘두른다
-무의식은 DNA에 새겨진 인간의 본능과 마음이 만나는 곳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무의식은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원시적인 욕구로 가득 차 있다. (17)
(DNA에 들어 있는 정보란 무얼 의미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책을 좀 읽어야 한다.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더 많이 읽긴 해야겠지만)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알 수 없는 무엇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 (22)
(정확히 말하자면 '나'라는 개념으로 경험되는 무엇. 의식적인 경험의 주체로서의 나)
-파충류의 뇌 위에 포유류의 뇌가, 그 위에 영장류의 뇌가 얹히고, 마지막으로 그 일부가 비대해져서 이루어진 것이 사람의 뇌다.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그 전체가 일관성 있게 설계되어 건설된 깔끔한 도시가 아니라 오래된 도심에 신도시가 덧붙여진, 그것도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여러 번 덧붙여진 복합 도시 같은 것이다. 그 도시에는 현재와 과거, 문명과 야생이 공존한다. (28)
-감정 기억: 어떤 자극에 대한 불쾌감을 기억하는 것은 암묵기억 중에서도 감정기억의 한 예다. [. . .] 실제 사람의 뇌에 저장되는 감정기억은 (훨씬) 격렬하다. 폭력, 학대, 거절, 배신, 버려짐. 그런 것들에 대한 공포와 분노, 갈망, 절망, 질투가 마음속에 생생히 저장된다. 그렇게 없는 듯 있다가 어떤 계기가 생기면 강한 감정을 의식으로 쏘아올려 우리 마음을 장악한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력감, 일순간 화산처럼 폭발하는 분노. 그런 것에 사로잡히면서도, 우리는 왜 그런지 모른다. 암묵기억이 만들어내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30-31)
-사람마다 고유한 마음의 생김새가 생기는 근본적인 기전은 조건반사가 만들어지는 기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칸델은 아플리시아 칼리포니카라는 달팽이를 이용해서 조건반사는 뇌에 구조적인 변화(뉴런들 사이의 연결)가 생겨서 성립되는 것임을 밝혀냈다. (42)
2장, 당신이 사는 세상은 현실이 아니다
*방어의 위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프로이트는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드, 자아, 초자아라는 구조적 모델을 만들어 낸다.
-[꿈에서] 깨어나기 전엔 꿈인 줄 모르듯, 우리는 자신의 현실이 왜곡됐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왜곡은 무의식의 소리 없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정신적 현실은 나보다 남에게 더 잘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내 정신적 현실은 안 보이고 남의 것은 잘 보인다. 내 눈의 대들보는 안 보이고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내 삶은 지극히 타당하고, 남의 삶은 괴상해 보인다. 내 인생은 작품이고 남의 인생은 '막장'이다. (85)
-쾌락 원칙: 마음의 일차적인 목적은 욕구의 만족이라는 것, 바꾸어 말하면 욕구의 만족이야말로 마음이라는 '장치'의 존재이유라는 것이다. (89)
-프로이트의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이고, 인간에게 세상은 욕망이 투사된 스크린이다. (90)
3장, 세상에서 제일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이다
-초자아와 이드의 야합은 흔한 현상이다. (114)
4장, 타인은 없다 대상만 있을 뿐
*프로이트의 대상과 클라인의 환상
-투사적 동일시: 자신의 믿음을 대상에게 투사해서 그 사람이 어떨 거라고 가정한 다음, 그런 면이 나타나도록 유도. (130) [굳 윌 헌팅의 윌의 경우]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건 체념과 애도를 통해서다. 분하지만 남이 책임져야 한다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억울하지만 보상을 포기하고 과거를 떠나보내야 한다. 내 마음은 결국 내가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152)
5장, 마음에도 유행이 있다
-[편집증적인 사람들은] 정보에서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결론에 정보를 끼워 맞추고, 맞지 않는 정보는 버린다. (168)
*건강한 자기애 (176)
나의 경우에도 자기애가 좀 부족한 듯하다. 그리고, 초자아가 너무 나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면도 있다. 나를 알아나가야 한다. 그와 동시에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도 해나가야 한다.
*성 행위에 대해서 다소 강박적인 면이 나에게 있다면, 그 이유는 내가 어느 정도는 짐작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6장, 이유가 있어야 행복한 게 아니다
-[프로이트는] 이성이 마음속의 비이성적인 부분을 완전히 통제하고, 세상의 불확실함과 인간의 취약함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리라고 그는 믿었다. (219)
-디폴트값이 다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늘 깔려 있다. (224)
-세상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정답 또는 진실 같은 건 없다. 해석과 믿음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도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객관적 실체가 아니다. 우리 마음이 재구성한 것들이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집착이고 미련이다. (230)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에 대한 정신분석의 답은 배부른 소크라테스다. 배부르면 철학을 못한다고 정신분석은 생각하지 않는다. 배가 불러야 철학도 잘한다. (235)
*클라인의 Jealousy, Envy 개념
-의식: 뇌의 거의 전 영역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정보처리 과정의 통합과 동조(Synchrony)에 의해 발생하는 것. (256)
-'나'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뇌에 저장된 기억을 참조해서 만들어내는 것. (258)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무의식은 전혀 신기한 것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갖고 있는 정보처리 과정이다. 오히려 정말 신기한 것은 의식이다. (266)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정체를 밝히고 그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뒤집어보자면 그로부터 의식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의식이, 마음의 관찰자가 되어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267)
꼬리글, 마음을 대하는 태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정말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지 의심해 보시라고.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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