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거리 주자의 고독(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120717)
다음 학기 영국 문학 강의 준비를 하다가 마주친 앨런 실리토(Allan Sillitoe)의 작품. 어떤 경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작품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 또한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다운을 받아서 보았다. 원래 이 작품이 장편인 줄 알았는데 20페이지가 조금 넘는 단편이라 내친 김에 소설도 같이 읽었다. 소설은 1959년에 발표되었고, 토니 리처드슨이 감독한 영화는 1962년에 나왔다. 원작자가 각본을 썼기 때문에 작품의 핵심 내용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작품의 흥미를 위해서 원래 단편 소설에는 없는 주인공 콜린 스미스의 연애 이야기가 영화에는 꽤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곁가지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많이 눈에 익은 것은 아마도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조선작의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이라는 소설 탓이리라.)
이 작품은 전형적인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점은 주인공인 스미스가 장거리 선수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일부러 패배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에서는 그가 처음부터 경주를 이기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지만, 영화에서는 사회적 반항아에서 제도에 길들여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에는 타협을 거부하고 패배를 선택하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다. 소설이 1인칭 화자의 내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영화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지만 장르의 특성상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는 그래서 다소 객관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
기존의 사회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좀도둑질이나 일삼는 하층 불량 청소년인 스미스. 그가 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주급 8파운드를 받는 공장 노동자였으나 결국에는 암에 걸려 죽고 만 아버지의 삶, 그리고 그 아버지를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면서, 아버지가 죽자말자 다른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어머니의 삶을 용납하기 힘든 것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빵집에서 꽤 큰 돈을 훔친 것이 결국 덜미가 잡혀서 소년원에 가게 된 그는 원장으로부터 자신의 장거리 재능을 인정받아 매일 아침 혼자서 소년원 밖의 숲에서 달리기를 하는 특혜를 누린다. 원장이 원하는 것은 크로스컨트리 장거리 달리기에서의 우승컵이고 스미스는 그 대가로 안락한 소년원 생활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전 하와이에서 근무하던 미군의 생활, 그 중에서도 권투를 하기를 원하는 상급자와 그것을 거부하는 하급자의 갈등을 주된 테마로 하는 [지상에서 영원으로]나, 또 더 나아가서 감옥의 소장과 수감자의 관계를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쇼생크 탈출]을 연상시킨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미스가 장거리 달리기 자체는 즐긴다는 것이다. 그 고독의 시간에 그는 진정으로 삶을 맞대면하는 느낌을 갖는다.
. . . I knew what the loneliness of the long-distance runner running across country felt like, realizing that as far as I was concerned this feeling was the only honesty and realness there was in the world and knowing it would be no different ever, no matter what I felt at odd times, and no matter what anybody else tried to tell me.
1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쉽사리 도덕적인 잣대를 가져다 되지 않고, 오히려 정치인이나 원장의 허위의식, 즉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올바른 일’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에는 강한 비판을 한다. 단정을 지을 수는 없겠으나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는 스미스의 고독한 결단은 그러한 허위의식에 대한 보복이자, 그러한 허위의식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결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사회적 약자로서의 하층 계급과 중*상류층과의 계급적 갈등이 많이 드러나는 그런 작품이다. 또 다른 한 측면에서는 안일한 사회적 도덕 기준을 넘어서서 인간으로서의 본모습(integrity)을 유지하려는 그런 점도 강조되고 있다. 세월이 꽤 많이 흘렀음에도 소설이나 영화 모두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성찰하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