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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학작품

프랭크 레이먼드 리비스.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 김영희 (130127) (28)

by 길철현 2016. 12. 17.

*프랭크 레이먼드 리비스.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 김영희 (130127) (28)

 

리비스의 이 책은 정종화 선생이 대단히 높게 평가했었는데, 지난 토요일 동범이 형을 만나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백낙청 선생 또한 리비스의 사상을 상당히 추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영희도 백낙청 학파의 일원으로 우리의 삶과 문학을 불가분의 것으로 보는 리비스의 태도를 따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석사 논문을 쓸 때, 혹은 종합 시험을 준비할 때 이 책의 1장은 읽었으나, 그 다음까지 읽어나갈 엄두는 잘 나지 않았다. (리비스가 [워더링 하이츠]에 대해서 일종의 스포트’(a kind of sport)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좀 더 곰곰이 추찰해 보아야 할 면이다.)

올해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문학 이론에 대한 공부가 급박한 과제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그 동안 계속 미루기만 했던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 셀던의 [현대문학이론]을 번역으로나마 읽었다. (영어로 읽지 못한다--혹은 못했다--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이 책 또한 영어가 만만치 않아서, 일단 급한 대로 한글 번역으로 읽었다. (김영희의 번역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콘래드의 경우를 볼 때, 정확한 맥락을 살리지 못한 부분도 많이 있다는 것은 감지되었지만.) 읽지 않은 작품들에 대한 비평이 많이 있어서 글의 내용과 내가 이해하는 것 사이가 좀 뜨는 부분도 많았지만, 리비스가 작품을 보는 기준은 엘리엇의 감수성의 통합이라는 원칙이나, 또는 문학 작품이 그냥 예술적 기교로 흐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가, 우리 삶의 문제를 얼마나 잘 담고 있는가(이 말은 좀 공허하긴 하지만) 등이라고 투박한 대로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글턴은 리비스를 상당히 비판하고 있지만, 자유주의적 인본주의태도, 그리고 리비스의 태도가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는--혹은 탈구조주의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나에게 있어서는--다소 고답적으로 비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작품을 자신의 비평 기준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로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면--그것의 타당성 여부는 차후의 문제로 치더라도--은 일단은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이글턴이나 리비스 모두 자신의 입장을 감추지 않고 전면에 내세우면서 작품을 분석 비판하고 있다. 그 점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