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남한산성. 학고재(0501)
김훈의 시각은 왜 과거로, 그것도 참혹했던 역사적 사건으로 향하고
있을까?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사라지고 싶다. 병원에서의 그 끔찍한
나날들. 누구보다도 견디기 힘들었을 소희. 삶이 주는 상처.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답도 없고 길도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때로는 쉽게 갈 수도 있으리라. 쉬운 것을 원하다가는
망하고 만다.)
병자호란 당시의 남한 산성의 상황을 조정과 성첩, 그리고 평민(서날쇠)의 나날을
물기 뺀 비장한 목소리로 적어나간 작품인데, 흡인력이 있다.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이나 화의를 주장하는 최명길이나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두고 볼 때, 최명길의 논리가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의 논리는 어디에서나 적용이 된다. 힘은 언제나 그 뒤에 폭력을 숨기고 있다. 정당함이나
공정성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의 논리를 기만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 그렇지만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적어도 의견을 개진할 여지는 두고 있지 않은가?
당대의 역사적 흐름에서 조선이 택할 수 있는 방책은 무엇이었든가? 힘이 없고 국가는
제대로 질서가 서 있지도 않고, 그래서 외국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나라.
그런 나라의 모습을 김훈은 짧은 문장으로 잘 포착해내었다.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큰 허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말이 또 온전히 허명만은 아니라는 점도
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항상 딜레마에 놓여 있고, 그 딜레마적인 상황을 잘 처리할 때
도약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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