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0712)
[여러 생각들이 이 순간 교차한다. 젊은 시절엔 참 소설을 많이 읽었다. 이해도 못하면서 시집도 많이 읽었고.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러나 나에게는 그러한 열망보다도 더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던 것인가? 이상문학상 읽기도 어느 순간부터는 대상 수상작만 간신히 읽는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작품들은 다 읽었는데, 김영하의 리비도적인 소설이라고 해야할까, [옥수수와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2010년도 대상수상작인 박민규의 [아침의 문]도 재미있게 읽었다. 박민규의 소설은 [카스테라]를 읽고서 썼듯이, 그의 방향성에 어떤 새로운 돌파구가 있을지,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신경숙은 우리 문학에 ‘쉼표’를 새롭게 도입했다면, 박민규는 ‘새로운 문단’을 도입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훈의 [흑산]이나 [남한산성]은 모두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읽은 작품들인데, 삶의 참혹함을 대하는 그의 ‘비장함’이 나를 매혹시키는 면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성란의 소설은 생각보다 읽기가 만만치 않은 대로, 독특한 목소리를 낸다는 생각이다.]
소설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혹은 우리 소설의 돌파구는? 소설의 전성시대가 물려준 에너지를, 그것이 다 소멸할 때까지 태우는 것뿐인가? 아직 성급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전체적인 느낌은 소설가들이란 역시 문장을 잘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라는 것. 하지만 거기에서 뭔가 더 이상의 새로운 활력을 찾지는 못하겠더라는 것. 그것이 내 솔직한 인상이다.
함정임이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현재에서 과거를 반추하는 그런 식이다. 그러면서 현재의 주인공은 작가인 함정임을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춘아 고모와 멕시코 삼촌에 대한 추억. 그 허구의 기억이 어떤 큰 울림을 지니는가?
김애란의 대상 수상작인 [침묵의 미래]도 실망스럽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은 나에게 별다른 울림을 주지 못했다. 왜 그럴까? 소설의 에너지가 동이 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상태인가? 너무도 많은 것을 그 동안 보았기 때문에 웬만한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내 의식에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하기 때문인가? 나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여자라는 데서 오는 질투심.) 어쩌면 나는 이 작가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라지는 언어, 언어의 소유자들. 다양성이 소멸되고 거대한 하나의 흐름 속--이를 테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모든 것이 수렴되고 마는 상태가 가져오는 존재의 경직화. [1984]의 세계. (나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나의 느낌을 따라간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는 ‘주인공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그런 이야기 정도로 보인다.
그 밖의 작가들은 이번에 모두 처음 접하는 작가들이다. 가장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이다. 획일화된 사회 구조에 속하지 않는 그런 존재. 하지만 그런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오늘 날 우리의 사회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평재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SF적 요소를 차용하여 사회의 추악함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 비판이 도식성을 넘어서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김이설의 [흉몽] 또한 엉망이 되어 버린 한 개인의 삶--그리고 그러한 삶을 배태시키는 사회의 모습--이 거의 광기의 수준으로, 꿈의 수준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천운영의 [엄마도 아시다시피]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피식’ 웃음 이상의 던짐을 주지는 않는다. 편혜영의 [밤의 마침]은 제목 자체는 특이하지만, 상당히 오이디푸스적인 이야기로 비친다. 주인공과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어 버린 십대 여자에의 관계는 해결되지 못한 오이디푸스적 부녀 관계로 비친다. 자신이 아버지의 성적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마음, 또 그 아버지를 형편없이 초라한 존재--성기의 크기가 아주 작은 것으로 드러나는--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오이디푸스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에 앞서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서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상황, 그 당사자의 내면 심리를 좀 더 미묘하게 보여주고 있다.
손흥규의 [배우가 된 노인]은 우연의 일치가 놀라우면서도, 또 그 뒤에 담긴 정서는 다소 진부한 점이 아쉽다. 염승숙의 [습]은 지금처럼 장마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암으로 죽은 여인,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병치시키면서 뭔가 효과를 노리고 있는데, 암으로 죽은 젊은 여인을 화자가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소설적 장치가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소설을 읽고 났을 때의 그 느낌. 흥미로운 이야기나, 아니면 사건이나 상황을 풀어나가는 작가들의 솜씨에 감탄을 하던 것. 그런 것이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없었다. 그만큼 소설 읽기에서 내가 멀어졌다는 말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번의 작가들이 낯설고, 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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