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래도 많이 편해졌지만, 과거의 나를 돌아다보면 말과 글 둘 다에 굉장한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그래도 글은 시간을 들여 수정을 해나갈 여유가 있어서 힘겹더라도 어떻게 어떻게 해나왔던 듯하다. 이 문제를 조금 되짚어 보니까 말과 글에 대한 콤플렉스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교류에서 느끼는 말과 글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쓰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글쓰기라는 것이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일 수가 있는데, 내 나름대로 나이가 들면서 일기라든가 독후감, 영화 감상문 등은 꾸준히 써온 것을 보면,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에서 큰 어려움을 느꼈던 것같지는 않다(물론 글쓰기가 항상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고만고만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말의 경우에도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말수가 적은 쪽이긴 했으나 그래도 내 할 말을 못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문제는 다수와 소통해야 하는 경우였다. 대학 시절 내내 수업 시간에 앞에 나가서 과제를 발표하거나 하는 기회를 회피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오래된 일이어서 기억이 안 나는지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랬던 기억이 없다, 라고 쓰는 순간에 하나가 떠오른다. 시를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영문과 생이면서도 나는 국문과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정년 퇴임하신 최동호 선생님의 "현대시 이론"인지 국문과 전공 수업을 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서툴렀고 생각 자체도 너무 깊이가 얕아서 선생님으로부터 "(수업 시간에 지적하고 하는 걸 보면) 좀 똑똑한 줄 알았더니, 엉터리야, 엉터리"라는 말을 들었다.
발표에 대한 두려움은 발표를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발표를 제대로 못하여 꾸중을 듣는 일은 마음에 상처를 주어 또 더 큰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사건은 대학원 첫 학기 때의 김치규 선생님 "비평이론 수업"이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셸리의 "시의 옹호"였는데, 당시 내 실력으로는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거기다 발표문을 준비하느라 거의 잠을 못 자고 가자, 요즈음 유행하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말처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무언가를 이야기 하다가, 안 그래도 깐깐한 김치규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힐책을 당하고 나는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 부끄러움, 수치심, 좌절감, 이해를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분노 등등으로 그만 대학원을 뛰쳐 나오고 말았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의 상황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단 호흡이 가쁠 정도로 긴장이 되는데 -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장을 하지마 -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방들이 나를 벌거벗겨 놓고 나의 비밀이나 치부를 꿰뚫어 보고 조그만 실수 하나에도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것만 같은 느낌, 그래서 머리가 백지가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현상이 꼭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지금 되짚어 보면 당시 내 감정들이 얼마나 칼날처럼 서 있었는지 또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있어서도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다음부터 서울 교대의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을 때도 엄청난 두려움과 직면해야 했다. 내 생각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때, 할 말을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 등은 나를 엄청나게 코너로 몰았다. 이제 이곳 강의도 6년차로 접어들고 있다. 강의 내용도 이제는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강의에 대해서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 와중에 받은 정신분석 상담 혹은 치료를 통해 내 두려움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게 된 것도 도움이 크다.
그리고 작년에는 그 동안 기회가 닿지 않았던 방송 연의 기회-비록 케이블이기는 하지만- 를 탁구를 통해 하기도 했다. 긴장이 되긴 했지만 예상보다는 인터뷰를 잘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습을 했던 질문이 아니라 사회자가 즉흥적으로 한 질문들에 나름대로 기지를 발휘해서 답을 했던 듯하다.
이제는 내 전공분야의 공부도 좀 더 충실히 해서 학회에서도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기회와 용기를 가지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책을 읽고 간단하더라도 논문 형식의 글을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마지막 관문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