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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원한

by 길철현 2017. 1. 17.


인간이 뭔가를 안다 혹은 모른다, 라고 하는 것은 보기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보통 정신병(증)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비치는데 - 이러한 문제를 잘 다룬 영화로든 마틴 스코세시(Martin Scorsese, 이 사람의 이름은 발음이 어렵다. 위키피디어를 보니까 텔레비전에 출연했을 때 본인은 이런 식으로 발음을 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말 발음과 영어 발음이 달라서 어떻게 적어도 오차는 있다)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나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이 있다 -  그 사람들에게는 사실 그 상황이 현실인 것이다(꼭 일치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말에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상상적인 것은 '객관적인' 결과를 낳는 '사실적인' 힘이다. 홍준기. [라깡의 재탄생] 38).


마음이 너무나도 답답하여(고통스럽고 혼란스럽다는 말이 좀 더 적절할 듯) 2009년[기록을 찾아보니 기억과는 달리 2008년 11월 13일이 첫 상담이었다] 정신분석적 치료(상담)를 시작한 첫 시간에 의사 선생님은 '정신분석이(혹은 정신분석적 치료가) 마음을 알아나가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했다. 나는 주 2회 상담을 시작하여 2009년 12월 31일에 일차적으로 종결을 했다. 그러다가 그 다음 해 4월에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와 주 1회 상담을 - 경제적인 문제와 시간적 제약 때문에 - 2015년 5월까지 받고 재차 종결을 했다.


녹음을 하고 싶었으나 - 이것은 나의 특이성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증거를 확보해 둠으로써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 선생님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담을 마친 뒤에 나는 상담 내용을 일지 형식으로 계속 적어나가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내 말은 쉽게 기억이 되었으나 선생님의 말은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상담 당시에 느꼈던 온갖 감정들과 이야기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끊임 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그 와중에 찾아왔던 불안 발작(정말 경악의 감정이라고 부를만한) 그 모든 것이 크게크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A4 용지로 200페이지에 달하는 그 일지 - 상담 후반부로 올 수록 게을러져서 제대로 적지 않았다 -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처음 글을 쓸 때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적다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내 상담은 어린시절의 한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고, 나는 그 사건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또 그렇다고 완전히 망각 속에 파묻지도 못하고, 그 사건의 당사자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만 키워왔고 그것이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다, 는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나의 생각이 맞는가, 혹은 짜맞춘 것인가? 라고 했을 때, 옳든 그르든 그 문제에 대한 판단은 거의 전적으로 나의 몫이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에 무기력하게 휘둘리지 않고 얼마나 건강하고 또 얼마나 행복하게 살수 있는가, 일 것이다. 이런들 저른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라는 목소리가 한 쪽에서 들려오지만, 아무리 그러한 나쁘게 보면 허무요 좋게 보면 초월이 일리가 없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 앞에 펼쳐지는 하나하나의 일에서는 그러한 목소리가 위력을 잘 발휘하지 못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운명을 두 눈 바로 뜨고 수용하겠다는 생각, 다시 말해 정신과 눈이 흐려지지 않는 동안에는 그래도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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