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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3월이 문을 열었는데

by 길철현 2017. 3. 2.


적지 않은 시간을 이 지상에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다 보니 별로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은 일들도 몇십 년 전 일이다. 87년도, 그러니까 30년 전에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할 때(누군가는 나에게 '미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 또는 방위'라고 비난했지) '태양의 제국'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중일 전쟁(더 크게 보면 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 부모님과 헤어져 적국민 수용소에 갇혀 전쟁의 비극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한 소년을 다룬 영화인데 - 스티븐 스필버그 표의 휴머니즘이 전체적인 기조인 가운데, 각본을 쓴 사람이 톰 스토파드라는 유명한 극작가라서 초현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난해한 부분들도 있다 - 이 영화의 대사 가운데, '인간은 감자 한 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A man can do anything for a potato)라는 말이 있다. 생존 앞에서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또 동물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말인데,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을 보면 인간은 절대절명의 생존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믿는 바, 혹은 믿는 바라고 믿는 바를 위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한 동안 수면 부족으로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수면 부족의 끝에서 감기가 찾아오고 감기가 오히려 수면에는 도움을 주어서 오늘은 정신이 좀 맑다.)


나에게 있어서 항상 문제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고, 그보다 좀 더 근원적인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다. 둘 다 난제이지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내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도록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 살아 있는 동안 내 몸의 신진대사나 화학작용의 대부분은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거의 기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의식적인 사고 부분에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 또한 대부분은 착각일 듯하다.


그렇다면 싫든 좋든 우리는 끌려가는 존재일 터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끌려가는가를 살피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거리두기가 역설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으리라.


분주한 일들로 내 일상의 흐름이 다소 혼란스러웠다. 3월이 와서 방학도 끝나고 개강이다. 탁구 레슨 선생에다 영미문학을 가르치는 강사, 소위 투잡족이 되는 셈이다. 논문 작업도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원래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촛불 집회'와 '태극지 집회'에 대해 쓰려 했는데, 나의 신변 잡사로 방향이 바뀌고 말았다. 너무 큰 문제이고, 너무나도 많은 목소리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감히 엄두가 잘 안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혼란의 와중에서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는 그래도 큰 물리적인 충돌이 없었다는 것 - 그것을 나는 바라는가? -이다.


고등학교까지 '국가 권력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없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국가 권력 자체'가 저항하고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럼에도 '권력' 앞에서 항상 '겁쟁이'일 수밖에 없었던 나. 현실이라는 것이 내 어린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면적이었다? (무엇이 옳은가? 혹은 무엇이 그른가? 과연 옳고 그른 것이 있는가? 입장들만 존재하는 것 아닌가?)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책을 읽고 숨을 쉬는 것이 조금은 자유로워져서 좋았던가? 나이가 들면서 내 나름대로의 판단이 자리를 잡았는가?


'태양의 제국'에는 주인공 제임스(짐)이 합창단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수오 간(Suo Gan)이라는 제목의 웨일즈 지방 민요로 자장가--수오 간이라는 말의 뜻이 자장가단다- 인데, 주인공이 직접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 말듯하여 나를 감질나게 한 적이 있다. 어쨌거나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어린 소년의 맑고 높은 목소리와 쉽고 온화한 멜로디는 내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영어가 아니라 웨일즈 지방 고유의 언어로 되어 있어서 그 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자장가라는 것도 몰랐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안식'이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그렇게 벗어난 추측은 아니었다.  


때때로 테스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되뇌이고, 차라리 '인간이 절멸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들지만, 혼란스러운 가운데에도 암중모색을 멈추지 말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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