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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어디로(Where to)?

by 길철현 2017. 3. 7.


한 동안 정신이 어수선해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내가 쓴 글을 읽지도 않으면서, 글을 쓰지 말라고 불평을 하는 몇몇 불순세력들은 기뻐했으리라). 나를 괴롭히던 수면 장애도 그 끝에 찾아온 감기도 그 기세가 꺾여 다시 이 삶에 대한 활력이 찾아오고 있다. (삶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와 이 '지옥보다도 더 처참한 현실을 참고 견뎌야 할 이유가 뭔가'라는 양극단 사이 어디쯤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지금은 정신도 꽤 맑고 의욕도 다소 충만이다.)


개학을 하고 강의를 나갔다가 교수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데, 다른 과의 선생님이 학교를 찾아온 독학사 졸업생들에게 점심을 사주었다. 그 선생님과 학생들은 내 자리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정규 학교에 편입을 한 이 학생들에게 그 선생님은 '촛불 시위도, 태극기 시위도 다 무섭다. 너희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취지의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 듯해서 그 자리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부만'이라는 말이 내 신경을 상당히 거슬렸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잘 알 수는 없으나, 그저께부터 조지프 콘래드의 [서구인의 눈으로 Under Western Eyes]를 학위 논문 준비 차 다시 읽고 있다. 제대를 하고 복학한 첫 학기인 89년도 2학기 (이 또한 거의 30년 전의 일이다. 시간이 정말 무상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소설 시간에 읽은 이 작품은 제정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것인데,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기 이전, 그러니까 80년대 중반까지의 권위 정부 내지는 독재 정권 아래의 상황보다 더 열악하거나 다소 비슷한 면이 있다.


철학과 3학년인 주인공 라즈모프는 당시의 정치적 현실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착실히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이었지만, 전제 권력의 핵심에서 국민들을 탄압하던 핵심 인물을 암살한 친구 홀딘이 자신의 탈출을 도와 달라는 요청에 직면하게 되자 자신의 꿈이 허공에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그는 '논문 현상 모집'에 응모하여 입상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자조적으로 '내 메달이 날아가는 구나'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라즈모프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이것은 지금 생각에는 라즈모프의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지 않나 한데) 친구 홀딘이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을 원망하면서도 그의 탈출을 도우려 애를 쓴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결국 그는 당국에 친구를 밀고하고는 이중첩자의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죄를 홀딘의 여동생을 비롯하여 반체제 인사들 앞에서 털어 놓고서는 심한 린치를 당하게 되고 만다.


이 소설은 일정 정도 콘래드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하여 쓴 소설이다. 그렇지만 중심 주제는 콘래드가 평생 동안 마음에 지녔던 부채, 그러니까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영국이라는 당시 최강국에서 신변의 안전을 도모한 자신의 죄의식,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면 독립 운동을 하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고 만 그의 부모와 친척들, 어린 그에게는 '죽음의 땅'이었기 때문에, 아니 그에게는 죽음 그 자체였기 때문에 달아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배신'을 했다는 죄의식으로부터는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 마음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콘래드의 비관적이고 비극적인 세계관은 - 그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볼 때 그렇게 되고 만 것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빅토리아 조 후기의 다윈적이고 기계론적이자, 맹목적적인 우주관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긴 하지만 -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지 못하고, 대체로 주인공의 파멸에 이르고 말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작품 속 주인공의 상징적인 파멸과 죽음이 콘래드에게서는 자신의 마음의 부채를 덜고 현실을 견디는 방편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글이 출발선에서 많이 벗어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인간이 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현실을 직면'한다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말만큼 어려운 말도 없을 것이며, 그것만큼 허구적인 말도 다시 없겠지만.) 물론 그 선생님의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외부 현실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학생으로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좋은 덕목이긴 하지만, 현실은 때로 '공부만'하고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있는가? 내일 내가 죽는데도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있는가?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줏대는 중요하다) 이런 극단적인 예를 드는 것은 지나친 처사리라. 그럼에도 현실을 피하지 않고 현실과의 부단한 교호 속에서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의 중요성은.


홀딘을 밀고한 라즈모프에게 경찰 간부는 '어디로'라고 묻는다. 딜레마에 빠진 인간은 답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답이 없음도 답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에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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