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를 여는 말

아침은 이렇게

by 길철현 2017. 3. 9.


집에서 밥을 먹지 않다가 한 2주 정도 전부터 식사 때까지의 출출함을 달래려 계란을 2개 후라이를 해서 먹다가, 동생이 가져다 놓은 수프가 있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 먹어보았더니 먹을 만해서 그것도 곁들이고, 이왕 이렇게 먹을 거면 시리얼도 먹자 해서 이마트에 가서 콘플레이크와 우유를 사오고, 그 다음 요즈음 통 먹지 않아서 쭈그렁 방태기가 되다시피한 사과도 한 알. 아쉬운 대로 한 끼 식사 해결.


요 며칠 새로 시작된 이 아침 식사 방식(얼마나 갈지?)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일단 계란을 굽고 수프에 탈 물을 끓이는 것까지는 별난 것이 없는데, 설겆이의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수프를 먼저 먹고, 그 다음 수프를 먹고 난 그릇에다 계란을 담아 먹고, 그런 다음에 거기에 다시 플레이크와 우유를 부어 차례차례 먹는다는 것이다(아, 더러워). 좀 지저분할 수도 있으나 내가 먹은 그릇이니 위생에 문제가 없고, 나중에 설겆이 거리도 줄고, 따라서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되니 좋은 점이 더 많은 듯하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곧 싫증이 나리라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봄철의 황사보다도 더 명약관화하다.


대학 진학과 함께 집을 떠난 뒤 몇 년 간의 하숙 생활, 그리고 그 뒤 몇 년 간의 자취, 혼자 먹기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은 귀찮기도 하려니와 컨디션이 안 좋아 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은 음식을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낭비가 심했다(하지만 이것을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이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혼자 자취를 하면서도 음식을 잘 해 먹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결국 택하게 되는 것이 식당이다. 학교 근처에 있을 때는 '학생 식당'뿐만 아니라 '매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어서 편리했는데, 학교를 떠나게 되니까 '아침'을 먹을 만한 식당을 찾는 것이 어려운 문제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직장을 갖기 않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 체질이 나에게 좀 맞기도 했지만(그러고 보니 내 3.40대는 주로 영어 과외로 보냈구나), 아침 식사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늦은 기상의 한 원인이었든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하는 결혼도 못(안)하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직장(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퍼센티지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낮을 듯하다)도 갖지 못한 나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이자 일반적인 잣대로 비추자면 한심한 놈일 것이다. 그런 나를 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대학에 진학을 할 무렵부터 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전에는 별로 글을 써본 경험이 없으면서도 과내의 '문예창작반'이라는 동아리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들어갔던 것이다. 단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지난 시간, '글을 쓴다'는 것이 나의 특이성을 견디게 해준 하나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이전에 내가 직면해야 했던 난제는 '두려움'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기도 할 터인데). 이 두려움의 실체를 정신분석적 상담을 받으면서 정면 대결을 할 기회가 있었는지, 그래서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는지, 이 또한 단정을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살이의 온갖 상황은 그것이 비록 이전에 없었던 그런 일이라 할지라도 그냥 사람살이의 한 부분이라는 것, 다시 말해 개인의 절멸인 죽음까지도 포함해서 좀 더 담담해지고 담대해져야 한다는 것(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 순간의 거만?).


2주일 전쯤에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고 마음가짐을 새로 할 필요가 있을 듯하여 번지 점프를 하러 갔다. 겨울이 끝나지 않아서 번지 점프를 하는 곳이 문을 열지 않아서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 번지 점프를 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낙하하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떨어져 내리며 주변을 보는 것, 그 떨어짐에 순순히 몸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정말 역설적으로 나를 자유롭게 해주던 그 느낌. 추락의 공포감 너머로 생생하게 다가오던 쾌감. 마침내 죽음이란 관념은 허구일 수도 있다는 터무니 없는 상상. 너무 많이 나아간다.


아침 식사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하루를 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로 쓸 말이 없다  (0) 2017.03.14
무제  (0) 2017.03.12
잘 알지도 못하면서  (0) 2017.03.08
어디로(Where to)?  (0) 2017.03.07
이사  (0) 2017.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