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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잘 알지도 못하면서

by 길철현 2017. 3. 8.


그 누구도 정치에서 혹은 권력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정치라는 것이 자신과는 무관한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까닭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얼핏 하나 떠오르는 생각은 5공 때 3S로 대변되는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에 세뇌된 탓도 있을 듯하다(내가 아는 사람 중 한 명은 정치적 현안에는 골머리를 썩이기 싫다고 말하면서, 국내 스포츠는 물론 외국의 스포츠 경기는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분이 천성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정부의 정책에 세뇌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지나치게 모든 일을 정치적 이해관계로만 따지거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타인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또 많이 있다.


인간은 작게 보면 한 개인으로, 또 크게 보면 전 지구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인터넷이나 항공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고는 해도, 한 개인은 대체로 한 국가의 일원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국가가 요구하는 바를 따르면서 살아간다(상황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김정남의 죽음에는 북한 당국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과 연루된 북한의 공무원과 첩보원들은 그렇다면 국가의 명령에 따라 살인에 동참한 셈이 된다. 이 경우 적어도 국가의 체제와 권력이 유지되는 한 자국내에서는 아무런 심판도 받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국가 권력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권력은 항상 부패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자면 국민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고 저항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장점 중의 하나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국가 권력을 심판할 수 있다는 점이리라. 하지만 국가 권력의 과오나 부패가 인내의 한계를 넘을 경우 국민적 저항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어 미국의 독립 전쟁,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에서 보듯이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태어나면서부터 그 상태는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이상한 것으로 비춰지지만) '현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혼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다. 거기다 지난 정권부터 남북 관계가 활로를 찾지 못하고, 북한은 또 북한대로 계속 핵개발을 추진하는 가운데 사드의 배치가 시작되자, 중국의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사드 도입이 잘 한 정책인지 아니면 적어도 지금처럼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해나가는 상황에서는 필요악인지 정확한 판단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중국 - 앞으로 러시아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는데. 지금 미러의 관계를 생각하면 러시아는 그렇게 강하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의 반발을 예상했다면, 예전에 우리 정부가 그렇게 주장했던 '자주국방'의 기차에 따라, 사드를 우리가 도입해서 운용하는 방식은 - 그 비용이 천문학적이라고 할 지라도 - 하나의 대안은 될 수 없었을까?).


현재의 답답하고 혼란스럽고 분열된 상황은 일단 헌재의 탄핵 선고가 나와야 방향성이 정해질 것이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나 흐름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했다. 지금으로서는 '서서 기다리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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