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ft, Jonathan(1667-1745)
<Biographical>
*그러나 Swift의 경우는 그와는 다르다<인용자--Addison이나 Steele>. 그의 목소리는 절망의 외침이다. 이것은 시대사조가 용납할 수 없는 불만이다. 보통의 경우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을 풍자하는 것이 상례이나 Swift의 경우에는 자신까지 포함시켜 모든 인간을 풍자한다. (17) [Gulliver's Travels, Shinasa]
1. Gulliver's Travels (1726) (독서: 2002년 11월 9일-19일)
Pilgrim's Progress가 영문학에 있어서 알레고리 양식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풍자(Satire)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문학에 있어서 뛰어난 풍자 작품이라고 선뜻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뿐더러, 풍자 문학의 전통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시 쪽에서는 김지하의 [오적]이 떠오른다), 일단 스위프트가 채용하고 있는 양식이 친숙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 문학이 사실주의 계열에 침윤되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이러한 사정은 Robinson Crusoe가 훨씬 더 잘 읽히고, 잘 와 닿는다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영국 소설에서도 이 작품을 능가할 만한, 풍자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 걸로 봐서, 소설이 과연 풍자 문학에 적합한 장르인가 하는 생각과, 그 전에 일단 풍자 문학에 대해 고찰을 해보아야 이러한 나의 견해가 어느 정도 타당한지를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위프트의 인간 염오증은 널리 알려진 것이니와(이 점도 다른 시각에서 볼 때는 어쩌면 인간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며, 인간이 지닌 부정적인 요소에 가하는 채찍질--하지만 이 점은 다시 인간의 조건과 맞물리게 되는데--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공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작품에서 비춰지는 인간 본성의 추악한 모습에서는 인간에 대해서 어떤 기대도 가지기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의 주제적인 측면보다도, 이 작품의 형식면으로, 그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낯설게 하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들, 그래서 친숙해지고 신선감을 잃어버리게 된 대상에다, 현미경을 들여대거나, 아니면 망원경으로 멀리서 바라볼 때 가져다 주는 충격과 놀라움을 스위프트는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인국 Lillput에서 걸리버의 시각은 멀어지고, 이와 반대로 Brobdingnag에서는 현미경을 들여대었을 때처럼 확대된다. 이 때 보여지고, 묘사되는 인간의 모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인간과는 전혀 다르게 제시된다. 그 점이 이 작품이 지니는 최대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이 점은 한 마리 커다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사가 묘사하는 인간 세계의 모습이 보여주는 충격과도 흡사하다. 스위프트의 작품이나 카프카의 작품이 똑같이 취하고 있는 방식은 ‘상황 자체의 부조리함과는 반대로, 세부 묘사는 정확성과 사실성의 원칙’--물론 그 시점에서 바라본 것이긴 하지만--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학적 세계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있어서, 걸리버가 제시하는 세계는 그 핍진성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고착적인 사물, 그러니까 릴리펏이나 브롭딩내그에 있는 모든 물상이 그 세계의 물리적인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는 점까지는 인정을 해 줄 수 있지만, 비나 눈 따위의 ‘부유 대상’까지도 그 법칙의 지배 하에 놓는다는 것에는 수긍하기 힘든 점이 있다. 바다와 그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도 일단 우리의 생각이 거기에 미칠 때에는 스위프트가 제시하는 세계에 허점이 있음을 지각하게 된다. 스위프트 자신도 글을 써나가면서 이 난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래서, 브롭딩내그는 바다로 나아갈 수 없는 절해고도가 되며,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지구의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과 똑같은 크기의 생물로 제시되고 있다. 릴리펏의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은? 하고 문제를 던질 수도 있지만, 이 정도에서 멈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일관적인 법칙이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걸리버 여행기]에는 약점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현대판 소인*거인 이야기인 [Honey, I Shrink the Kids]나 [Honey, I Blew Up the Kids] 등에서는 인물 자체만 줄어들고, 커졌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부각되지 않고, 카프카의 [변신]에서도 이런 문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여행기의 3*4부에서도 이런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사고를 이루는 틀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 대상에는 변이가 가해지지 않고 일부분만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이런 문제도 천착해 보면 좋은 글감이 될 듯하다.)
주제적인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 당대에 대한 이해나,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 및 스위프트의 사상 자체에 대한 천착,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렇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제시되는 인간의 모습은 거짓과 허욕과 시기와 육욕 등 부정적이 짝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이 지닌 좋은 성정은 도외시하고,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킨 스위프트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더 나아가 인간 성정이 부정적인 요소로만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면 스위프트가 보내는 야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마도 스위프트의 글은 우리에게 보내는 날카로운 채찍이리라. 그 채찍의 세례 가운데 우리는 변화의 길을 모색하게 될 여지는 있으리라.
<중심 생각>
1. 이 작품과 [Robinson Crusoe] 비교
2. 상황 자체의 비현실성과는 무관하게, 세부적 묘사에 있어서는 아주 사실적임. 카프카의 변신과 비교.
3. Gulliver--gullible
<인용>
*he<Gulliver-quoter> observed, how contemptible a Thing was human Grandeur, which could be mimicked by such diminutive Insects as I: And yet, said he, I dare engage, those Creatures have their Titles and Distinctions of Honour; they contrive little Nests and Burrows, that they call Houses and Cities; they make a Figure in Dress and Equipage; they love, they fight, they dispute, they cheat, they betray. . . .
But, as I was not in a Condition to resent Injuries, so, upon mature Thoughts, I began to doubt whether I were injured or no. For, after having been accustomed several Months to the Sight and Converse of this people, and observed every Object upon which I cast my Eyes, to be of proportionable Magnitude; the Horror I had first conceived from their Bulk and Aspect was so far worn off, that if I then beheld a Company of English Lords and Ladies in their Finery and Birth-day Cloaths, acting their several Parts in the most courtly Manner of Strutting, and Bowing and Prating; to say the Truth, I should have been strongly tempted to laugh as much as them as this King and his Grandees did at me. Neither indeed could I forbear smiling at my self, when the Queen used to place me upon her Hand towards a Looking-Glass, by which both our Persons appeared before me in full View together; and there could nothing be more ridiculous than the Comparison: So that I really began to imagine my self dwindled many Degrees below my usual Size. (131-2)
*He<the King of Brobdingnag> laughed at my odd Kind of Arithmetick (as he was pleased to call it) in reckoning the Numbers of our People by a Computation drawn from the several Sects among us in Religion and Politicks. He said, he knew no Reason, why those who entertain Opinions prejudicial to the Publick, should be obliged to change, or should not be obliged to conceal them. And, as it was Tyranny in any Government to require the first, so it was Weakness not to enforce the second: For, a Man may be allowed to keep Poisons in his Closet, but not to vend them about as Cordials. (159)
*He<the King of Brobdingnag> was perfectly astonished with the historical Account I gave him of our Affairs during the last Century; protesting it was only an Heap of Conspiracies, Rebellions, Murders, Massacres, Revolutions, Banishments; the very worst Effects that Avarice, Faction, Hypocrisy, Perfidiousness, Cruelty, Rage, Madness, Hatred, Envy, Lust, Malice, and Ambition could produce. (160)
*I said farther, That if good Fortune ever restored me to my native Country, to relate my Travels hither, as I resolved to do; every Body would believe that I said the Thing which was not: that I invented the Story out of my own Head: (278)
*Thus, gentle Reader, I have given thee a faithful History of my Travels for Sixteen Years, and above Seven Months; wherein I have not been so studious of Ornament as of Truth. I could perhaps like others have astonished thee with strange improbable Tales; but I rather chose to relate plain Matter of Fact in the simplest Manner and Style; because my principal Design was to inform, and not to amuse thee.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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