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kie Collins, The Woman in White(1860) (110819, 1143-1215)
콜린즈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거기에 담긴 메시지의 측면에서는 별다른 것이 없다. 그것은 주인공인 하트라이트(Hartright)--이름부터 ‘바른 마음’의 사나이이고, 그래서 악에 맞서 진실의 승리를 이끌어 낸다--가, 자신의 욕망, 즉 자신이 사랑하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인 로라와의 결혼을 성취한다는 전형적인 “소망 충족”(Wish fulfillment)의 소설이다. 이 소망 충족이 윗세대와 자신이 속한 세대와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좌절을 맞보았던 사랑을 성취한다는 점에서는 오이디푸스 계열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장점은 에드가 앨런 포가 개척한 추리 소설 혹은 범죄 소설의 장르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밀을 감추고 또 드러내놓는 작업을 정교하게 해나간 것에 있다고 본다. 작품 전개의 궁금증은 독자를 책 속으로 자꾸 빨아들인다. 물론, 현대의 소설과 비교해 볼 때, 불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된 부분도 없지 않고, 그 전개도 발이 느리긴 하지만, 작품 전체를 구성해나간 솜씨는 가히 일급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만큼 사건의 다면적인 면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소설을 전개시킨 것 또한 이 작품에 흥미를 더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우연성이 이 작품에서는 많이 줄었으나, 여기서도, 하트라이트가 우연히 만난 앤이, 그가 앞으로 겪는 사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된다는 점, 또 퍼시벌과 페스코의 계략에 의해 죽은 것으로 된 로라와 하트라이트가 재회하는 장면에서의 우연성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없지는 않다. 이 작품을 하트라이트의 욕망 충족이자, 복수극이라고 할 때, 하트라이트의 영민함이 부각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로라를 너무 어린애 취급해서 수동적인 인물로 만든 것, 그와 반면에 매리언의 경우에는 탈성화를 시켜서 성적 욕망이나 질투심은 없는 인물로 만든 것 등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부분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페스코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사건을 조종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마는 것 또한 생각해 볼 점이 많이 있다. (저자는 하트라이트가 직접 죽이는 대신에 이탈리아의 비밀 정치 단체라는 장치를 통해 페스코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데, 이 부분에 다소 핍진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작품을 짜나가는 솜씨는 상당하지만 이 작품이 고전 대중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뭔가를 배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깊이가 깊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굉장한 솜씨를 발휘한 장인의 작품이나, 삶의 밑바닥으로 치고 들어가는 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소설 작품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 나름대로 상당한 매력을 지닌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트라이트, 매리언, 페스코라는 인물은 우리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