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콘래드, 조지프/어둠의 심연

Albert Guerard. Conrad the Novelist. [The Journey Within - Heart of Darkness] [암흑의 핵심]

by 길철현 2017. 12. 6.


* Albert Guerard. Conrad the Novelist. [The Journey Within]

(Heart of Darkness. Norton 3, 4판)

(Harold Bloom, ed. JC's HD. 1987)


[사실 이 글은 오래 전에 한 번 읽었고, 또 얼마 전에도 한 번 읽었는데, 논지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좀 제대로 이해한 그런 느낌이다.


F. R. 리비스가 다소 신비평적인 입장에서 이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면, 게라드의 이 흥미로운 글은 심리적인,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신분석과 다소 관련된 측면에서 이 작품에 접근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야 진부해진 면도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이 "커츠에 대한 것도 아니고 벨기에 관료들의 잔인성에 관한 것도 아니고 화자인 말로에 대한 것"(37)이라는 그의 해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독창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이 표층적으로는 아프리카 콩고에서의 제국주의 내지는 식민주의의 참상과, 아프리카라는 야만의 상태, 비문명의 상태에서 유럽인이 '문명의 억제'에서 벗어났을 때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는 인간의 이드나, 그림자 등 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우리의 무의식의 어두운 면에 대한 탐사라는 것이다. 


게라드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참신한 것이고 그 논지 또한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작품의 시각적 묘사 외에도 리듬이나 수사(rhetoric) 등 서사 방식에도 주목을 하는 등 다각도로 이 작품을 조명하고 있는 뛰어난 글이다. 하지만 게라드 식 해석의 문제는 아체베가 후에 주장했듯이 콘래드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어두움'을 위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인을 배경화하고, 왜곡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으로 칭한 것이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모르겠으나 - 근래에 그 신화를 유포한 것은 분명히 헨리 모건 스탠리이다 - 작품의 초반부에서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 자유국]의 참상을 실감나게 재현하였던 것과는 반대로, 작품의 후반부로 갈 수록 "야만과 원시의 대륙"이라는 아프리카에 대한 당대의 담론을 콘래드가 무비판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제대로 설명을 해낼 수가 없다.


물론 자신의 선조가 "야만과 원시"의 존재로 낙인을 찍인 것에 대한 분노를 감안 하더라도 아체베가 콘래드를 "지독한 인종주의자"로 낙인을 찍은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이 작품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심한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해명해 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인용]

(34) Geography and Some Explorers 전체 읽을 것 (the vilest scramble for loot that ever disfigured the history of human conscience and geographical exploration)

- 이 당시 콩고가 유럽인들의 큰 관심사였음. Stanley에게서 Kurtz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음.

(a man who could gloss over the extermination of savagaes with pious moralisms which were very possibly "sincere.")

- 이 때에도(1958) Guerard는 Negroes라는 단어를 쓰고 있음.

(35) 콘래드의 깨달음. Nostromo에서 계속 강조. 자기 기만의 무서움. 선동가의 자기 기만.

deception is most sinister when it becomes self-deception, and the propagandist takes seriously his own fictions.

- idealism에 대한 환멸

anything would seem preferable to the demoralized greed and total cynicism of the others.

(36) HD combines a Victorian ethic and late Victorian fear of the white man's deterioration with a distinctly Catholic psychology.

커츠의 마지막 말을 카톨릭의 고해 성사와 연결시키는 것. 그리고 당시에 팽배해 있는 백인이 타인종 사이에게 타락할 것이라는 생각

- 아프리카 사회가 야만이고 문명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장소라는 것은 하나의 신화? 그 신화를 콘래드는 계속 쫓고 있는 면도 있다.

(37) Of the two menaces - the unspeakable desires and the apathy - apathy surely seemed the greater to Conrad. hence we cannot quite believe the response of Marlow's heart to the beating of the tom-toms. This is, I think, the story's minor but central flaw, and the source of an unfruitful ambiguity: that it slightly overdoes the kinship with the "passionate uproar," slightly undervalues the temptation of inertia. [게라드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볼 필요. [진보]에는 apathy도 많이 나오지 않는가?]

(37) 이 작품은 커츠에 대한 것도 아니고 벨기에 관료들의 잔인성에 관한 것도 아니고 화자인 말로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 게라드의 주요 논지이고, 이 부분은 한 동안 주목의 대상이었다가 지금은 오히려 비판을 많이 받는 쪽)

(38) HD concerns Marlow (projection to whatever great or small degree of a more irrecoverable Conrad) and his journey toward and through certain facets or potentialities of self.

- 리비스가 말로를 단순한 화자로 취급한 것 비판. a spiritual voyage of self discovery

(find yourself . . . what no other man can ever know.)

(39) the night journey into the unconscious, and confrontation of an entity within the self.

Freudian id, the Jungian shadow or more vaguely the outlaw

- the introspective plunge and powerful dream seem true: and are therefore inevitably moving.

- It seems to me I am trying to tell you a dreammaking a vain attempt, because no relation of a dream can convey the dream-sensation, that commingling of absurdity, surprise, and bewilderment in a tremor of struggling revolt, that notion of being captured by the incredible which is of the very essence of dreams. . . ." (168)

[게라드는 이 작품을 우리 인간의 '심층 의식의 탐사'라는 쪽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을 하고 있다. 이 해석의 문제점은 그 해석이 이 작품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분열시키고, 또 아체베가 지적하듯 아프리카 인과 아프리카에 대해 왜곡된 상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모순성을 이렇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41) 이 작품에서 콘래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식을 쓰고 있다.  

 -  I was anxious to deal with this shadow by myself alone,and to this day I don't know why I was so jealous of sharing with anyone the peculiar blackness of that experience.

- a man who is lying at the bottom of a precipice where the sun never shines

(42) 리비스가 부정적 형용사를 남발한 것을 비판한 데 대해서 게라드는 그것이 말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야 (they must remain unspeakabl) 하기 때문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리비스가 신비평적인 잣대로 이 작품을 본다면, 게라드는 정신분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비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암흑]은 마음의 깊은 부분 the deeper region of the mind에 관한 것.

(44) 콘래드의 인상주의 기법 : 이 부분은 작품의 내재적 비평적 측면에서 연구해야 할 부분.

(finds here one of its great triumphs of tone.)

- the narrative advances and withdraws as in a sucession of long dark waves borne by an incoming tide.

[해변으로 들어왔다가 물러나는 파도와 같은 느낌. 서사 기법]

the movement of the story is sinuously progressive, with much incremental repetition.

(46) the dark tonalities and final brooding impression derive as much from rhythm and rhetoric as from (such) visual details.

(47) 어둠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 a darkness of passivity, paralysis, immobilization

fear of the feminine and passive(Freudian theory)

(48) Uneven in language on certain pages, and lacking "The Secret Sharer"'s economy, HD remains one of the great dark meditations in literature, and one of the purest expressions of a melancholy temper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