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
--[시창작 교실]에서
그는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거기다 얼굴도
사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무개성적이었다
얼굴 어디에도 세계고나 시의 환희는 묻어
나오지 않았다 시인은 신체 어느 부분에다
언어를 숨기고 있다가 뽑아내는 것일까
그는 내 책상 겸 의자가 너무 앞으로 나와
있다고 물러나게 했다가 너무 가장자리라고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창문을 닫게 하고는 그래도
시끄럽다고 커튼에 가려진 윗창문 마저 닫게
했다 그리고도 성이 안 차 이번에는 단상이
너무 높다며 옆으로 밀게 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예민한 게 아니라 병적인
모양이다* 허혜정은 쏘파의 배치에 집착하는
편집증은 기이한 것이며 쏘파는 어떤 위치에
있어도 화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그것은
자아를 <나>라는 쏘파에 이르게 하려는,
끝없는 나라는 주체의 공간에 배치하려는
노력이며 결국 쏘파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틈새를 만드는 일이며 채워넣는 일이며
세계의 틈을 열고 구멍을 메꿔넣는 일**
이라고 알쏭달쏭하게 말하고 있는데 글쎄,
모를 일이다
*이승훈 <쏘파 이야기>에 나옴
**이승훈 <쏘파 위치에 대하여>에서 재인용. 원래는 <타이어 또는 말 아래의 공간>, [현대시학], 1997년 10월호에 실린 글.
(2000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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