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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첫인상

by 길철현 2016. 4. 14.


첫인상

    --[시창작 교실]에서


그는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거기다 얼굴도

사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무개성적이었다

얼굴 어디에도 세계고나 시의 환희는 묻어

나오지 않았다 시인은 신체 어느 부분에다

언어를 숨기고 있다가 뽑아내는 것일까


그는 내 책상 겸 의자가 너무 앞으로 나와

있다고 물러나게 했다가 너무 가장자리라고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창문을 닫게 하고는 그래도

시끄럽다고 커튼에 가려진 윗창문 마저 닫게

했다 그리고도 성이 안 차 이번에는 단상이

너무 높다며 옆으로 밀게 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예민한 게 아니라 병적인

모양이다* 허혜정은 쏘파의 배치에 집착하는

편집증은 기이한 것이며 쏘파는 어떤 위치에

있어도 화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그것은

자아를 <나>라는 쏘파에 이르게 하려는,

끝없는 나라는 주체의 공간에 배치하려는

노력이며 결국 쏘파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틈새를 만드는 일이며 채워넣는 일이며

세계의 틈을 열고 구멍을 메꿔넣는 일**

이라고 알쏭달쏭하게 말하고 있는데 글쎄,

모를 일이다


*이승훈 <쏘파 이야기>에 나옴

**이승훈 <쏘파 위치에 대하여>에서 재인용. 원래는 <타이어 또는 말 아래의 공간>, [현대시학], 1997년 10월호에 실린 글.

                   

(2000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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