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학 (戱 謔) 2
드디어 나는 미치고 말았다 미치지 않으려 미치지 않으려 눈꼽만큼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는 대뇌피질은 야금야금 씹어 먹었지만 반나마 먹었지만 (골 빈 인간은 나 같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리라) 미침은 막다른 골목처럼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가 (예전에 북한이 그랬지 혹은 그랬다는 말만 난무했던가) 순식간에 나를 잠식하고 말았다 까짓거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미치지 않으려 미치지 않으려 터지는 오줌보마저 부등켜 잡아야 하던 고통은 이제 아듀 웃음 한 번 크게 웃지 못하던 시절도 이제 아듀다 (어머 저 사람 미쳤나봐 고인을 앞에 두고 깔깔 거리다니) 미치기 전에도 사람들은 빈번히 나를 미쳤다고 했다
드디어 나는 미치고 말았다 미치지 않으려 미치지 않으려 쓰디쓴 독약마저 달게 삼켰지만 이제 미침이 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까짓거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미침이 가는 데로 몸을 내맡기면 만사 오오우케이이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미침은 나에게 한 가지 무리한 요구를 한다 피, 흡혈귀처럼 피가 필요하다 (어째 이야기가 괴기스러워 진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송곳니를 목에 박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는다) 까짓거 미침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으니 그 정도 요구야 아침과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드는 건 나의 솜씨이다 나는 여러분의 피를 뽑아 하늘에 곱게 칠한다 피가 모자랄 땐 내 피를 뽑기도 한다 자고나서 머리가 어지럽거나 느닷없이 코피가 터지는 이유를 여러분은 이제 깨달았으리라 (물론 흐린 날이나 비오는 날은 휴식 시간이다 미친 자라고 쉬지도 말라는 법이 있는가) 여러분은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었는가 미친 자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기울이다니 미친 놈년
(2000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