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언 페더가 이 작품을 버질의 [에어네이드]의 구조를 차용한 것으로 이야기 한 것에서, 에반스는 이 작품의 구도가 전체적으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빚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에반스는 이 작품이 실제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간이 지옥으로 설정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프리카 인들이 느낄 분노와 항의 등에 무감각한 듯하고, 이 글에 묘사된 여성의 모습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성 없이 축자적으로 받아들여 반-페미니즘적인 성향을 그대로 노정시키고 있다. 콘래드가 에반스의 해석대로 이 글을 창작했다면, 콘래드가 보여주는 '도덕적 비전'은 지극히 인종주의적이고 반-페미니즘적인 것으로 그다지 배울 것이 없는 그런 작품이 되고 말 것이다.
거기다 청자들이 말로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의 전체적 구도를 심도 있게 살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바깥틀 화자인 '나'와 말로의 관계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이만식의 논문과 유사한 면이 있긴 한데,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는 [워더링 하이츠]의 록우드처럼 '나'를 한 번 더 거쳐 전달--그것이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되는 형식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용]
(190) That Africa represents Hell and the great river, Acheron, Phlegethon, Styx, or all the rivers of Hell together is a traditional interpretation of the story.
[50년대, 아니 60년대까지 사이드나 아체베 등 제3세계 출신의 지식인,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 인종주의적 시각이 여과없이 노정되었다. 이 글은 특히나 여성들에 대한 말로의 언급을 축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반-페미니스트적이기도 하다.]
--. 이 작품은 지하세계를 통과하는 여행이고, 그것을 통해 콘래드의 도덕적 비전을 보여줌.
--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도에 있어서 단테의 [지옥편]을 차용
(191) 말로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말로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못 박는 것에는 공감하기 힘들다. 특히 바깥틀 화자, 1차 화자인 '나'가 사실은 [워더링 하이츠]의 록우드처럼 이 글 전체를 쓴 사람이라고 볼 때 더욱 그러하다.
(193) 커츠가 살아있는 루시퍼라고 말하는 부분도 공감하기 힘들다.
(194) His final words, "the horror, the horror," may not only refer back to his Satanic service but may also look ahead to an everlasting h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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