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속한 대학 탁구 동아리인 고대 탁구 사랑회 OB가 2015년 7월 횡성에서 열린 전국 대학 동호인 대회에서 OB들의 숙원이었던 단체전 우승을 하고 난 뒤의 소감을 적은 글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도 좋지 않고, 또 나도 개인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어서 OB 모임도
못해 전체적으로 요즈음은 탁사 OB가 다소 침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 신입생
환영회에도 OB 참석자가 여섯 명(대 OB 선배님들을 포함하면 여덟 명) 정도로 아주 저조
했지요. (가을에 있을 창단 기념식에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OB들의 얼굴을 많이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년부터 93학번 정호준 학형이 탁사 OB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쓰고 있고 ‘밴드’도 만들어 거기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듯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해놓고 쓴 소리부터 해서 미안하네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네요(OB 회장이라는 직함을 맡은 지가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후배에게
넘겨야 할 때가 많이 지난 것 같은데, 저의 개인적인 책임도 적지 않네요. 지난번 신입생 환영회
에서도 좀 이야기를 했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호준이에게 회장 자리를 넘겨주고 싶은데. 언제 한
번 OB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네요).
탁사에 들어와서 활동을 한지도 벌써 25년이 되었네요. 그리고 일 년이 조금 넘는 YB 기간을
뺀다면 그 기간의 대부분을 OB로 보냈네요. 그 긴 기간 동안 약체로 불리던 우리 고대 탁사가
강팀으로 아니 길고 탄탄한 역사를 지닌 동아리로 자리를 잡게 되어서 선배로서 또 탁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뿌듯하고 흐뭇합니다. 그 긴 시간 동안에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지만,
시합을 두고 보자면 홍익대에서 열렸던 1996년 제12회 대회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YB
남자 단체전 우승을 거두면서 약체라는 오명을 떨쳐버린 일과, 2001년 17회 대회에서 당시
97학번을 주축으로 한 여학우들이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결승전을 방송대와 했던 것 같은데)을
거둔 일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이로써 우리 탁사는 남녀 모두 단체전에서 우승을 한 탁구 동아리가
되었지요. 그리고 2010년도부터 2012년까지는 3년 연속(잘 믿기지가 않네요) 우승을 차지하여
명실상부 대학 탁구의 명문 동아리(이렇게 적고 보니까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탁사는 많은 기쁨을 안겨 주었는데 2003년도 경인지역 대회에서 OB 개인전 우승을
했고, 홍천에서 열린 2010년 26회 대회에서는 94학번 고광순과 한 조를 이뤄 개인복식에서도 우승을
거두었지요. 한 가지 늘 아쉬웠던 것은 OB가 단체전에서 우승을 거두지 못한 것이었는데, 2000년대 중반
부터 대학 시합이 주로 강원도에서 개최되어 참석하는 OB팀이 줄었기 때문에 우승을 할 기회가 분명 있었을
텐데도 번번이 준결승전이나 결승전에서 고배의 쓴 잔을 마셔야만 했답니다.
이번 시합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운동을 별로 하지 못하고 나간 대회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전체적으로 우리 팀의 기량이 고른 편이었고(모두 다 알다시피 단체전에서는 특히 이 부분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영우(04)가 괴력을 발휘하여 한양대의 선우혁, 단국대의 한상용, 용인대의 장태진 등
강자들을 차례로 꺾어준 덕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서효기(03), 임호균(05)도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지요.
시합 진행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자세한 글은 뒷부분에). 시합은 5단식에서 2단 1복으로 바뀌었고,
공도 셀룰로이드에서 폴리(플라스틱) 공으로 바뀌었는데 이런 점도 우리에게 좀 유리하게 작용한 듯합니다.
<예선전>
한양대
1. 김영우 : 선우혁 3 : 2 (승)
2. 서효기, 임호균 : 김태욱, 이효성 1:3(?) 패
3. 길철현 : 류동흠 0 : 3
인하대
1. 길철현 : 구자선 3 : 0 (승)
2. 서효기, 임호균 : **** 3 : 0 (승)
조 2위로 본선 진출
<본선>
8강전 - 단국대
1. 김영우 : 한상용 3대 2 (승)
2. 서효기, 임호균 : 곽경종, 민기(?) 3대 0 (승)
3. 길철현 : 전상훈 2대 2 8대 10 상황에서 중단 (본선에서는 동시에 세 테이블에서 시합)
준결승 - 강릉원주대 A
1. 서효기 : 이섭 1대 3(?) 패
2. 길철현, 임호균 : 최규철, 박태순 3대 1 승
3. 김영우 : 최수용 3대 0 승
결승 - 용인대
1. 서효기 : 전재표 0대 3 (패)
2. 길철현, 임호균 : **** 3대 1(승)
3. 김영우 : 장태진 3대 2 (승)
원래 운동 신경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데다가 나이도 들고, 또 이번에는 연습을 별로 못해서
개인적으로는 게임들이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숙원이었던 OB단체전 우승을 이루어낸
기쁨은 3주가 지난 지금에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감돌게 합니다.
그리고 남자 YB는 이번 대회에서 아쉬운 고배를 마셨지만, 여학우들이 오랜만에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낸 것도 이번 대회에서 거둔 큰 소득이네요.
이제 제 나이가 올해로 50이 되었네요. 인정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요(만으로는 아직 40대야
하고 외치지만). 육체적으로 나이가 드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마음의 애틋함은 색깔이 잘 변하지 않는
듯합니다. 탁사 여러분의 탁사에 대한 애정 또한 변함이 없겠지요.
학창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그 옛날 학생회관 4층의 동아리방과, 또 2층의 동아리방, 그리고 418기념관
지하 2층의 탁구장을 둘러싼 이야기들, 술자리에서의 해프닝들, 시합가서 있었던 일들(25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물리적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어서 많은 사건들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제 머리를 스쳐갑니다)이 앞으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계속 활발하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사진 첨부 >
[혹시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시합 전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있는데 그냥 올립니다.]
참 오랜만에 글을 쓴다(경어체로 쓸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평어체가 글의 진행을 용이하게 할 듯해서 그냥 일기를 쓰듯 써볼까 합니다. 며칠 전에 한 번 글을 쓰려고 시도를 했는데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그런지 잘 되지 않더군요. 오늘은 붓 끝에 힘이 좀 붙어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동안 박사 종합시험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또 지난 가을과 겨울에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탁사는 물론이고 다른 외부 활동들도 소홀히 했네요(오늘은 경어체가 오히려 더 잘 맞는가?).
요 근래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아서인지 탁사 오비들의 활동도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다소 침체기를 겪고 있는데(93학번 정호준이 ‘밴드’를 만들고 오비 탁사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상당히 애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성화가 잘 되지 않고 있네요)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아니면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옛 절친으로부터의 반가운 전화 같은 그런 기쁜 일이 있어서 그 기쁨의 순간을 글로 정리해 보려합니다. 시합 당일 날 우리 “고대 오비가 단체전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이미 밴드에 올렸고 또 많은 축하도 받았기에 여기서는 좀 더 세세한 상황과 개인적인 소회를 중심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사실, 횡성에서 열린 이번 대학 시합(제7회 이에리사 배)은 종합시험 보는 날과 바로 그 다음 날인데다(당연히 운동을 별로 하지도 못했지요) 참석을 못하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정으로 내리고 있었고, 다른 후배 OB들도 별다른 소식이 없어서 YB에게 그렇게 통보를 했지요. 그런데 임호균(05)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단체전 멤버 구성이 되니까 일요일에 있을 단체전에라도 참가하자고 했지요(문장이 왜 이렇게 안 만들어지지?). 그래서 별다른 기대 없이 시합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좀 고쳐 쓸 것, 이 부분)
(4월 4일, 토요일)
임호균과 김영우(04)는 토요일에 열린 개인전에 참가했는데, 2부로 참가한 임호균이 준우승(결승전에서 광운대의 김승락에게 졌지요. 이 김승락은 모르는 선수인데 이번에 보니까 연습을 많이 했는지 상당히 잘 치더군요)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둔 반면에, 지지난 번 대회에선가 2부에서 우승을 해서 1부로 부수상승을 한 영우는 예선전에서 단대의 한상용을 2:0(3세트 게임)으로 이겼으나, 장태진(용인대)에게 0:2로 지는 바람에, 조성준(서울대)에게 한 세트를 내주면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4월 5일, 일요일)
둘째 날에는 개인복식과 단체전이 있었습니다. (문장이 잘 안 되지만 참고 끝까지 적어나갈 것. 그 다음에 수정을 하면 된다. 고쳐 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끝까지 적어나가자.) 호균이와 내가 한 조가 되고, 영우와 서효기(03)가 한 조가 되어서 쳤는데, 우리 조는 예선전에서는 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한양대의 선우혁과 류동흠 조를 2:0으로 이기면서 조 1위로 본선에 올라갔으나, 본선 1회전에서 초등학교 선수 출신의 여자후배들에게 1대 3으로 지고 말았지요. (연습량의 부족과 나이, 복식에서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합. 리시브에도 문제가 있었고, 무리한 스매싱으로 인한 범실도 많았지요. 호균이도 백핸드에 비해서 포핸드에서 다소 범실이 있었고요.) 영우와 서효기 조도 본선 1회전인가 2회전에서 광운대의 김태훈, 김승락 조를 만나 석패했지요. (수비수인 김태훈이 깎았다 안 깎았다 하는 공에 효기의 강한 드라이브가 안타깝게도 미스가 많이 났지요.)
이제 남은 것은 단체전뿐이었습니다. 어쩌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합을 할 수 있는 -- 다른 게임에 대한 부담감 없이 --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요. 보통은 참가 팀이 적어서 입상은 그래도 무난한 것이 단체전이었는데, 이번에는 팀이 열 팀이 넘어서 입상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단체전은 핸디가 없음.)
<예선전>
예선전은 한양대 B(B팀이지만 실력은 A팀)와 인하대 A팀으로 우리 계획은 인하대를 이겨 조2위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한양대와 우리 팀이 먼저 시합을 했고, 첫 게임은 김영우와 선우혁의 시합이었지요. 영우가 2대 0으로 밀릴 때만 해도 실력이나 오픈 부수 차이(선우혁은 약 1부, 영우는 강3부)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폴리 공) 3세트부터 영우가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하더니 선우혁의 백사이드 드라이브를 쇼트로 침착하게 디펜스하면서 대역전극을 이끌어 냈습니다. 애초에 밀릴 것으로 생각했던 첫 게임에서 영우가 승리를 이끌어 내면서 우리는 조1위로 예선을 통과할 기대에 부풀었는데, 두 번째 복식으로 나간 효기와 호균이 조가 상대방 팀의 디펜스에 말리면서 1대 3인가로 지고 말았지요. 마지막 게임은 류동흠과 나였는데, 앞서 나가거나 비슷하게 나가긴 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류동흠의 미스 없고 정확한 백핸드에 0대 3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선에서의 이 아쉬운 패배는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약이 되었습니다.
인하대 A팀과의 시합에서는 내가 1번으로 나갔는데, 작년 시합에서 진 적이 있는 구자선이 나와서 영우는 은근히 걱정을 했지요. 하지만 이 선수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이 후배가 내가 오픈 서브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걸고 나오는 바람에 본부석에서 사람이 와서 심판을 보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3대 0으로 가볍게 이겼답니다(서브를 넣을 때 별로 신경을 안 쓰면 예살 버릇이 나와서 서브를 넣을 때 팔로 가리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부분은 고쳐야 할 안 좋은 버릇이지요.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그런대로 이해하면서 치는데 젊은 친구들은 오픈 서브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복식도 3대 0(?)으로 무난히 이겨서 조2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요.
[본선 8강전]
이 시합부터는 모든 게임을 동시에 들어갔는데 이 8강도 큰 고비였습니다. 상대 팀인 단대에는 한상용이 버티고 있었고(한상용은 고등학교 때 선수생활을 했고, 지금은 나이가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드라이브 연타가 좋은 친구지요), 객관적으로는 우리가 전력이 좀 낫긴 했지만,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는 없었습니다. 복식에서 효기와 호균이가 상대팀을 가볍게 이겼고, 나랑 붙은 상대도 첫 세트에서 쉽게 이겼기 때문에 무난히 이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2세트부터 백을 강하게 밀고 나오면서 게임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연습량이 부족한 것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면 게임이라도 좀 노련하게 운영해야 하는데,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2대 1로 지다가 2대 2로 만들었는데, 5세트에서는 정신없이 밀리다가 조금씩 따라 붙긴 했으나 점수 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었지요. 옆옆 테이블에서는 영우와 한상용이 시합을 하고 있었는데, 영우는 전날 개인전에서 쉽게 이긴 것과는 달리 첫 세트를 먼저 내준 뒤 한 세트를 따라 붙었다가 그 다음 1대 2에서 2대 2가 되었는지 2대 1에서 2대 2가 되었는지는 불확실 한데, 5세트도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11대 8인가로 이기면서 경기는 끝났답니다. 나는 2대 2, 8대 10으로 진 상황에서 서브는 상대방이라 패색이 짙었는데 영우가 이기는 바람에 속칭 독박을 면할 수가 있었답니다.
[4강 강릉원주대 A]
강릉원주대는 우리의 천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학교를 우승의 문턱에서 아니면 4강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횡성에서 열린 작년 대학 시합(31회 전국대학동호인 연맹 대회)에서도 4강에서 강릉원주대에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강릉원주대에는 이섭이라는 막강의 에이스가 있을 뿐 아니라, 이봉섭, 최규철, 최수용 등도 만만치 않은 실력이었기 때문이다(점심을 먹고 나니까 말투가 또 바뀌었네요). 이번 대회에는 다행히 이봉섭이 나오지 않은데다가 2단 1복 진행이어서 우리에게 유리했다. 이섭에게 한 점을 주더라도 나머지 단식과 복식을 잡으면 될 것이었다. 오더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와 효기가 1번으로 섭이와 붙어서 나름 선전을 했지만 다소 역부족이었는데, 3번 단식인 영우가 최수용을 3대 0으로 잡고, 나와 호균이가 최규철과 박태순 복식조에게 조금 고전을 하긴 했으나 3대 1로 낙승을 거두었다. (중간에 서브를 넣으려는 호균이에게 내가 타임을 걸자 호균이가 공을 던지다가 멈추었는데 그것을 박태순이 시합 진행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스라고 하는 바람에 한 점을 빼앗기고 그래서 그 세트를 잃었다. 내가 타임을 너무 늦게 불렀고, 호균이도 서브를 넣는 상황이었으면 그냥 넣었어야 했는데 다소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결승 용인대]
용인대는 우리를 꺾은 한양대를 8강에서 이기고, 4강에서는 광운대와 접전 끝(용인대의 전재표와 광운대의 김태훈이 전체 1대 1 상화에서, 2대 2 듀스 상황에서 전재표가 13대 11인가로 이겼다)(여기도 좀 고쳐쓸 것)에 신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왔다. 용인대와 결승전에서 만난 것이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용인대와의 시합에서는 복식은 일단 우리가 한 점을 낸다고 한다면, 장태진과 전재표 둘 중 하나를 잡아야 하는 상황인데, 두 사람 다 만만치가 않은 상대였다. 장태진과 전재표는 오픈 시합 각각 오픈 시합 1부 중, 2부 강 정도인데 어떻게 잡아낼 수 있을지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영우가 그래도 전재표가 낫지 않을까 해서 3번으로 뺐는데 대진표는 예상과는 달리 장태진과 맞붙게 되었다.
1번 효기가 전재표에게 패하고, 복식은 좀 순조롭게 나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용인대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았다. 복식은 이긴다고 한다면 마지막 3번 단식이 문제였다. 과연 영우가 한 번 더 괴력을 발휘해서 장태진이라는 거목을 꺾어줄 것인가? 복식 시합을 하면서도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영우에게 자꾸 신경이 갔다. 영우는 2세트를 먼저 내 주었다가 선우혁과의 시합에서처럼 3세트부터 힘을 발휘하여 2대 2를 만들었다. 나와 호균이의 복식조는 일단 우리 시합을 이겨야 했기 때문에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하여 2대 1로 앞선 다음 4세트 12대 11로 앞선 상황에서 상대방의 드라이브를 내가 스매싱을 해서 승리를 이끌었다. (상대의 전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데도 결승전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경기력이 떨어져서인지, 영우의 시합에 신경이 가 있어서인지 다소 힘겹게 끝낸 셈이었다.) 마지막 세트에서는 영우가 뒤지다가 10대 9가 되었고 승리를 목전에 두었으나 범실이 나는 바람에 듀스가 되었다(기억이 잘 미치지 않는다. 영우가 기억이 난다면 좀 더 자세하게). 이후 듀스를 두어 번인가 반복하다가 태진이가 범실을 해서 영우가 14대 12인가, 15대 13인가로 승리를 거두었다. 고대 오비가 드디어 단체전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순간이었다.
우리 팀이 우승한 데에는 단체전 진행 방식의 변경이나 대진운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우리 팀의 실력이 그래도 모두 고른 편인데다가 무엇보다도 영우가 여자 친구의 응원 덕택인지 괴력을 발휘하여(영우의 실력이 많이 올라간 것도 인정해야겠지만) 강자들을 연거푸 꺾어준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내 글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이 밖에도 YB 여학우들이 준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를 내주었다. 탁사에 여학우들이 숫자가 적고 또 활동도 빈약한 것이 늘 아쉬움이었는데, 2001년도 전국대학 시합, 2005년에 경인지역 대회에서 우승을 한 다음 큰 쾌거이다. 2000년을 전후하여 여학우들이 상당히 강세를 보였는데 그 이후로는 좀 아쉬운 상황이다. 전력이 좋았음에도 아쉽게 본선에서 탈락한 YB 남자 단체전 팀에게는 위로를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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