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금 준우승을!> (수원 시합 후기)
가을을 맞이하여 탁사 후배들이 또 한 명 두 명 시집가고 장가를 가네요. 모두 축하하고, 결혼하더라도 자신이 몸담았던 탁구 사랑회를 잊지 말고 계속 사랑해 주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번 시합에서도 우리 고대 OB가 단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여, 지난번 충주 시합에서의 준우승이 단순히 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는 말로 후기를 시작하고 싶네요. 앞으로의 대회에서도 우리 고대가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라고, 자세한 단체전 소식은 조금 있다가 전하기로 하고, 또 벌써 시간이 좀 지나버려 세세한 상황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기억이 미치는 대로 요번 시합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건 이번 시합은 1회 임에도 불구하고, 학기 중에 개최를 했고, 거기다 지난번 시합이 끝난 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참가율이 저조했습니다. 더욱이 OB 시합도 토*일요일 양일에 걸쳐 진행되었기 때문에 OB의 참가는 더욱 저조했습니다. (이 시합을 주관한 김태훈의 말은 이 시합 자체가 YB를 위한 시합이고, 또 OB와 YB의 친목 혹은 친교를 도모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태훈이의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면 매번 OB를 이틀에 걸쳐 시합에 참가하게 하기 보다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그렇게 하는 것이 친목의 취지도 살리면서, 또 OB의 참가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아닌가 하는 절충안도 그에게 제시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고대는 열 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 신청을 하여, 참가 대학들 중 유일하게 단체전을 두 팀이나 구성하는 저력(일단 쪽수로 밀어붙여!)을 보여주었습니다.
<첫 날, 토요일 시합>
첫 날은 개인전만 했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대진표를 확인한 결과, 나의 경우 예선전에 선수가 두 명 밖에 없어서, 무조건 본선 진출을 하는데, 1위로 올라가면 부전승으로 곧바로 8강이라, 한 번만 이기면 성적을 낼 수 있어서 내심 그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문장이 왜 이렇게 길지?) 참가 선수들이 많지 않아서 새로 대진표를 짠 결과, 나의 상대는 서울대의 강호정이었습니다. 지난번 충주 대회에서 3대 1로 쉽게 이겨서 요번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건 아니었습니다(내 시합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시합이 끝난 뒤에 적어 둔 게임 후기를 이 글 말미에 옮겨 놓았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읽어 보시기를). 간신히 3대 2로 이기고,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하여 본선 1회전은 부전승으로 통과하고, 8강의 고비만 넘으면, 성적을 내는 것인데, 아뿔싸, 8강의 상대는 요즈음 뜨는 별인 최용국이었습니다(용국이의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용국이가 쉽게 우승을 했지요. 오목대인 호정이만 용국이를 좀 괴롭혔다고 할 수 있을까?). 1세트만 비슷하게 가고 나머지 두 세트는 실력차가 느껴져서, 이왕 질 바에는 공격이나 실컷 하고 지자는 마음으로 서브부터 마구 공격을 했는데, 역시나 안 되더군요. 나와 함께 1부로 나간 김영관(87)은 본선 1회전에서 강호정에게 지고, 고광순(94)도 조2위(예선전에서 이한선에게 1대 3으로 졌지요)로 본선에 진출하여 1회전에서 최용국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2부 개인전은 우리 학교가 지난 시합에서 휩쓸었고(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우리가 차지했지요), 그 결과 입상한 멤버들이 모두 1부로 올라왔는데, 1부에 대한 두려움인지 이 멤버들은 모두 시합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최원석(02, 지지난 시합에서 방심하는 바람에 경희대의 김병규에게 지고만?)이 그 동안 선배들의 텃세와 압박에 눌려 발휘하지 못하던 실력을 여자 친구 앞에서 마음껏 발산하여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원석이의 시합에서 최대의 고비는 아마도 16강전에서의 김시훈(93)과의 시합이 아니었는가 하는데, 시훈이의 오목대 백핸드에 밀려, 원석이가 쩔쩔 매는 듯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선배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후배에게 게임을 양보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다음 고비는 시립대 이종석과의 8강(4강?)전이었는데, 이종석의 서브가 워낙 좋아서, 좀 밀리는 감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고 3대 2로 신승했지요(시합이 끝난 뒤 종석이의 말, 선배님들 너무해요. 난 너무 외로웠어요). 그 뒤의 경기는 보지 못했는데, 오히려 쉽게 이겼다는 후문이더군요. 그리고 근 5년 만에 다시 시합장에 모습을 드러낸 너무나도 반가운 류일렬 옹(91)은 놀랍게도 예선전에서 가볍게 2승을 거두고 조 1위로 진출했는데, 안타깝게도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한 듯하네요.
<뒷풀이>(시간이 바쁘시거나 글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분은 건너뛰시길)
뒷풀이는 대체로 비슷한 모습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내가 고광순을 놀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술김에 한 장난이긴 하지만, 그리고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진 않았지만, 고대 탁사의 에이스였던 고광순이 요즈음 시합에 나와서 판판이 지는 것을 보면서, 직장 생활과 또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여러 문제점들을 한편으로 이해하면서도, 광순이처럼 감각이 좋은 후배가 조금만 탁구를 열심히 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원망이 뒤섞인 내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온 일렬이로 인해, 아니면 언제나 시합 첫 날 뒷풀이가 그렇듯이 다음 날 중요한 게임을 두고 있는 선수들을 제외한(혹은 선수들까지도) 모두 과음을 했는데, 나는 광순이를 놀린 벌을 일렬이한테 받아야 했습니다. 다음 날 시합을 위해 중간쯤에 모텔로 와서 잠을 청하는데, 그래서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잔뜩 취한 일렬 옹이 들어오더니, 엎어치기, 메치기, 코브라 트위스트, 사람을 반쯤 죽여놓고, 홀연히 자신은 집에 가서 자고 온다고 하더군요. 참 화를 낼 수도 없고.
<둘째 날, 일요일 시합>
이 날 시합은 개인 복식과 단체전이었는데, 우리 B팀 선수들이 오지 않아서, B팀은 구성이 안 될 듯했습니다. 먼저 김기덕(99)은 몸이 안 좋아서 나올 수가 없다고 했고, 그 전날 새벽 두 시에 출발했다는 소문이 들리는 장주석(99)은 연락 두절이고, 10시쯤에 이지웅(99)에게 전화를 했더니,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그제서야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오지 말라고 했다가, 또 단체전은 늦게 시작하니 될 것도 같다고 했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결국 오는 쪽으로 매듭이 지어졌지요.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무리한 참석 요구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참석하기로 했다면, 단체전의 경우는, 정말 부득이한 사유가 아니면 오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 상식이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단체전 전에 개인 복식이 있었는데, 나와 고광순이 속한 조에는 다른 팀이 오지 않아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는데, 이 때문에 몸을 제대로 풀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악재로 작용했는지, 본선 1회전에 조2위로 올라온 서울대의 박진경, 황현근 조에게 0대 3으로 지고 말았지요. 김영관과 이윤희가 한 팀을 이룬 조의 팀은 모두 나왔는데, 강적들(배상식, 이용주/ 박진경, 황현근)이라, 첫 세트는 빼내었지만, 그 뒤로는 밀리는 바람에 2패로 예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복식에서도 젊은 피들이 일을 내었지요. 복식은 1부, 2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전 광순이와 내가 춘천 시합에서(2004년) 3위를 한 이래 처음으로 성적을 낸 쾌거라고 해야 할 듯하네요. 그 전 시합은 보지 못했는데, 8강에서 박진경, 황현근 조를 꺾은 것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전체적으로 다소 밀리는 면이 없지 않았는데, 그리고 마지막 세트에서도 밀리다가 결국에는 대 역전극을 이루어 내었지요. 4강에서는 아쉽게도 서울대의 이계춘, 박성환 조에게 석패했습니다.
<단체전>
원래 8개 팀이 참가하기로 되어있었는데, 막상 시합에 나온 팀은 여섯 팀이라, 3개 팀을 한 조로 묶은 뒤, 리그전을 벌여 조 1,2위가 4강으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B팀은 멤버가 4명밖에 되지 않아, YB인 박정주(00)를 불법 투입하여 가까스로 팀을 구성했습니다(안 되는 줄 알면서도). 시합 전에 나는 A팀을 기준으로 볼 때 경희대는 우리가 3대 7이나 2대 8정도로 불리하고, 서울대는 5대 5 맞수이고, 그 외의 팀은 다 이길 수 있다고 했는데, 나의 이러한 예측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지요.
먼저 A팀(나, 김영관, 고광순, 이윤희(97), 최원석)은 경희대, 인하대와 예선전을 치렀는데, 우리는 먼저 경희대에 0대 3으로 가볍게 지고 말았습니다. 이윤희가 1번으로 나갔는데 김현에게 졌고, 나의 상대였던 배상식 형은 2003년 경인지역 결승전에서 내가 이긴 적이 있는 상대이긴 하지만, 나보다는 좀 실력이 낫다고 보이는데, 최근에 허리가 안 좋아 별로 운동을 안 한 상태였고, 나는 운동을 그래도 상당히 많이 했기 때문에 해 볼만 하지 않을까 했는데,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0대 3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원석이는 방심했던 상대인 김병규를 이번에 또 만났는데,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 여지도 없이 무참하게 지고 말았지요. 하지만 인하대와의 시합에서는 고광순(고광순의 유일한 승리?), 나, 김영관이 모두 상대를 가볍게 꺾어 3대 0 승리, 조 2위로 4강에 진출하게 되었지요.
B팀은 경기가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서울대에게는 아마도 가볍게 졌을 것이고, 시립대와의 경기에서는 아슬아슬하게 가는 것도 같았는데, 2대 3인가로 지고 말았습니다. 류일렬이 경기수와 그래도 비슷하게 가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지요.
이번 단체전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서울대와의 4강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왜냐하면 내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요). 나는 서울대 사람들과 다 쳐보았고, 실력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는데, 우리 팀에서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볼 선수는 없었지요. 어쨌거나 오더는 우리에게 다소 유리하게 나왔습니다. 내가 한 점을 잡고, 최원석이 서울대 선수 중에선 제일 약한 박성환을 만났으니 잡아준다고 한다면, 나머지 세 명 중에서 한 점만 따면 우리가 결승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렇듯 시합 결과도 참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시합은 후반에 가면 늘 그렇듯이 1번부터 5번까지 한꺼번에 진행을 하는 방식이었지요. 1번으로 나간 김영관은 이계춘을 만났는데, 두 사람의 경기 결과는 예측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영관이가 3대 1로 쉽게 이겼습니다. 두 사람 다 백핸드가 좋은 플레이인데, 아무래도 영관이의 백이 더 정교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2번 고광순은 박진경과 만났는데, 박진경의 디펜스가 좋기도 하거니와, 광순이의 플레이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 광순이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4번으로 나간 이윤희도 황현근의 뿅 드라이브와 스매싱을 이겨내고 어려운 상대를 꺾었습니다. 반면에 쉽게 이길 것으로 생각했던 최원석은 개인복식에서 너무 힘을 뺐기 때문인지 허망하게 박성환에게 1대 3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원석이는 역적이 될 수도 있었는데, 역시 운이 좋은 사나이라, 나를 단체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고, 독박도 면했지요). 팀 스코어 2대 2상황에서, 이때 3번으로 나간 나와 호정이는 게임 스코어 2대 2까지 가는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지요. 팀을 위해 뭔가 하나 하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마침 그럴 기회가 온 것이지요. 물론 그것은 또한 역적으로 몰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어쨌거나, 나는 호정이의 플레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몇 가지 계획도 세워둔 뒤 그대로 밀고 나가 5세트는 비교적 쉽게 이겼습니다.
결승 진출! 하지만 결승전의 상대인 경희대는 역시나 높은 벽이었습니다. 나는 김병규와 버거운 시합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모두 지는 바람에 이번에도 역시 0대 3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 이틀간의 장정은 막을 내렸습니다.
많은 팀이 참가하지 않았긴 하지만, 지난번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도 우리가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이루어 낸 것을 자축하고, 또 거기에 내가 일조를 했다는 사실에서 그 동안 열심히 운동한 보람을 다소나마 찾아봅니다. (개인단식, 개인복식, 단체전 모두에서 성적을 낸 사람은 한턱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두 생업이 바쁘겠지만, 시간이 날 때에는 건강과 그리고 또 시합에서의 좋은 성적을 위해 열심히 탁구를 치기를 바랍니다. 모두 수고했고, 또 시합이 없는데도 항상 시합장에 와서 선후배를 격려하는 이재웅(99)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감합니다(아, 힘들다!).
<경기 결과>
<개인전>
1부: 길철현 8강
김영관 16강
고광순 16강
2부: 최원석 우승
김시훈 16강
류일렬 16강
<개인복식>
길철현, 고광순 16강
김영관, 이윤희 예선 탈락
서효기, 최원석 3위
<단체전>
A팀 준우승 (예선 조 2위, 준결승 서울대 3대 2, 결승 경희대 0대 3)
B팀 예선 탈락
--경기 후기
<26일> 개인전
1. (예선전) 강호정 1)패(9) 2)패 3)승 4)승 5)승(9)
지난번 충주 시합에서 3대 1로 손쉽게 이겼기 때문에(이 때는 내 회전 서브를 많이 탔다), 이번에도 쉬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또 지더라도 조2위로 본선에 진출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는 시합이었다. 그래도 조 1위로 진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겨야 했다.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초반의 강공에 미스가 많이 났다. 그리고, 호정이도 내 플레이에 대해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들어온 듯했다. 두 세트를 빼앗겼을 때는 이길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했으나, 3세트부터는 지나친 공격을 조금 자제하고(그래도 3구에서 강하게 공격하지 않으면 호정이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미스를 감수해야 했다), 호정이의 범실을 유도했다. 호정이는 강한 커트볼 보다 너클성 리시브에 미스가 많았기 때문에 공을 가볍게 밀어주는 리시브를 했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5세트에서는 10대 4가 되었을 때, 이겼다고 생각하고 조금 늦추자 금방 따라와 10대 9가 되고 말았는데, 다행스럽게도 호정이가 마지막 공격에서 미스를 해서 내가 이겼다. (언제나 조금의 방심도 시합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긴장을 풀어야 한다.) 단체전에서도 호정이와의 시합은 양상을 약간 바꾼 개인전의 되풀이었다.
2. (본선 2회전) 최용국 1)패(9) 2)패(4) 3)패(3) 8강
본선 1회전을 부전승으로 올라가고 난 뒤, 그 다음 상대가 아뿔싸 최용국이었다. 져달라고 약간 떼를 써보았지만, 그건 그냥 허언에 지나지 않았다. 결승전도 아니고, 본선2회전에서 무슨 개뿔. 그래도 첫 세트는 내가 앞서 나가면서 시합을 유리하게 이끌었으나(용국이의 공격을 한두 개 막았고, 네트도 나를 도왔다), 용국이의 서비스에서 리시브를 좀 더 과감하게 하지 못하자 곧바로 용국이의 강한 3구 공격이 들어왔고, 그걸 받아낼 수가 없었다. (용국이의 마지막 포핸드 전진 서브는 지금 생각으로는 과감하게 걸었어야 했다. 역시 드라이브 임팩트의 정확성이 문제이다. 아니면 잘 말아주는 게임 운영 능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2세트부터는 두들겨 맞는 것이 싫어서 2구부터 걸려고 했는데, 잘 나오지도 않는 서브를 제대로 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아직도 용국이와 나, 그러니까, 아마추어 1부 톱클래스와 나 사이에는 2,3알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점수를 많이 내지는 못했지만, 상대에게 당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나왔다는 것 정도를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어차피 이기긴 힘이 들었으므로).
<27일>
(개인복식)
1. 길철현, 고광순 : 박진경, 황현근 (본선 1회전) 1)패(10) 2)패 3)패(8)
예선전은 다른 팀이 참가를 안 해서 시합 없이 곧바로 본선으로 올라갔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나나 광순이나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반면, 진경이와 현근이는 예선 리그를 거치는 동안에 몸을 충분히 풀었던 것이다. 그래도 첫 세트에서는 나와 광순이의 호흡이 어느 정도 맞고, 내 드라이브 공격도 좀 꽂혀주어서 점수를 앞서 나갔다. 그런데, 10대 8, 우리 서브 상황에서 광순이가 드라이브 공격 2개를 연달아 범실하고, 듀스(상대편 어드밴티지) 상황에서 광순이가 넣은 짧은 서브를 현근이가 뿅 드라이브를 거는 바람에 첫 세트를 지고 만 다음에는 플레이가 말리고 말았다. (그 전날 내가 (술이 다소 취한 김에) 광순이를 너무 자극한 것이 화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광순이는 대체로 시합 둘 째 날에는 스윙이 풀어져 시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이번에도 그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단체전>
(예선전)
1. 배상식 1)패(7) 2)패(6) 3)패(7)
상식이 형과의 시합에서 같이 드라이브 전형으로 시합을 해서는 아직 게임이 어렵다는 깨닫게 해준 게임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차이를 보인 것은 서브와 리시브였다. 내가 상식이 형의 서브를 못 받은 것은 없지만, 상대가 공격하기 어렵게 찌르지 못한 반면, 상식이 형은 내 서브를 강하게 깎거나, 밀거나, 찌르거나, 혹은 긴 경우 곧바로 2구 공격을 했다. 드라이브 랠리에 들어가서도 내가 다소 밀렸다. 전체적으로 상식이 형과는 시합을 좀 많이 하면서 상식이 형 공을 이겨내는 힘이 생겨야 뭔가 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인하대 펜홀더 1)승 2)승 3)승(8) (예선전)
원석이가 ‘폭탄’이라고 한 사람. 커트가 좀 강한 것 외에는, 5부 정도 되는 실력. 이것저것 여러 가지 연습을 해보았는데, 역시 내 탁구에 범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3. 강호정 1)승(8) 2)패 3)승(7) 4)패(7) 5)승(5) (준결승)
이번 시합의 하이라이트. 시합에 들어가기 전 호정이가 나의 상대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소 어렵긴 하지만, 자신은 있어’ 정도가 아닐까 한다. 처음부터 나는 호정이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몇 게임을 해서 몸도 충분히 풀렸고 해서 강공으로 밀어붙이면 승산이 있을 듯했다. 이 작전이 적중해서 첫 세트를 따내면서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호정이의 디펜스와, 많진 않지만 포핸드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한 번 막히면 그 다음부터는 호정이의 디펜스에 오히려 공격이 끌려가거나, 호정이가 코스를 빼버리면 그걸 올리기에 급급하기 쉬웠다. 4세트까지는 내 공격이 좀 더 강했는가, 약했는가, 혹은 범실이 적었는가, 많았는가에 따라 시소게임을 벌였다. 5세트에 들어갈 때쯤에 다른 시합들은 끝이 나서 우리 학교와 서울대가 2대 2인 상황이었다. (이 때 나는 (조금 과장을 한다면) 다시 한 번 내 운명을 시험하는 장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결과적으로 이기든 지든 간에, 실패가 두려워서, 내가 해야 할 것을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문제되었든 것은 지나친 적극성이라기보다는 소극성이었기 때문에, 변화를 꾀하는 시점이라면, 일단 이러한 태도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 떠오른 것은 호정이가 포핸드 사이드로 넣는 약간 짧은 서브를 무리하게 공격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편하게 호정이 백핸드로 툭 밀어주는 것이 호정이의 공격 범실을 유도하거나, 내가 4구 공격을 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것이 주효했다. 나는 일찌감치 점수를 앞서 나가 8대 2까지 벌였고, 호정이가 8대 5까지 따라 왔으나, 내 공격과, 포핸드로 뺀 리시브, 그리고, 호정이의 범실 등으로 시합을 승리로, 그리고 우리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어 내었다. (심판을 보던 분 중 한 분이 내 시합을 보고 경기를 잘 봤고, 내 플레이가 멋있다는 칭찬의 말을 해주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4. 강병규 1)승 2)패(8) 3)패(9) (결승전) 중단
병규 씨는 요즈음 볼이 잘 맞는다. 백핸드와 포핸드가 모두 좋아졌다. 예전에는 디펜스를 잘 하면 스스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강한 백핸드에다, 포핸드 드라이브까지, 그것도 코스가 깊어서 게임이 더욱 어려웠다. 첫 세트는 좀 수월하게 빼냈는데, 뒤로 갈수록 게임이 어려워졌다. 4세트로 들어갈 때 우리 팀이 경희대에 3대 0으로 지는 바람에 게임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젠 이기기에 버거운 상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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