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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콘래드아프리카제국

정수일 -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1,2. 창비

by 길철현 2018. 9. 29.

[읽고 나서]

정수일의 특이한 이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학자로서 상당히 많은 저서를 내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가 논문을 쓰는데 급선무 중의 하나여서, 두 권으로 된 두터운 여행기를 집어들었다. 이 책은 80 고령으로 아프리카를 60일에 걸쳐 여행한 그 여정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젊은 시절부터 아프리카와 맺었던 인연에서 출발해서, 문명사가로서의 자신의 지식, 그리고 아프리카 각국의 지도자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등도 담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앞부분에 실린 "여는 글, 실크로드와 설욕의 땅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는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아프리카가 나는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자료들을 접하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의 문명사관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종횡 세계일주를 통해 어렵사리 발견하고 확인하고 선양한 '세계의 일체성'은 인류가 공통적 조상을 갖고 있다는 인류의 혈통적 동조, 세계 역사가 공통적 발전 법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역사의 통칙, 문명 간의 부단한 소통과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는 문명의 통섭, 그리고 숭고한 보편가치를 다 같이 누리려 하고 있다는 보편가치의 공유, 이 네가지 공통요소의 발현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면서도 현재의 엄혹한 국내외 정세를 생각해 볼 때 이 말의 가치가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지는 다소 의문시 된다. 그렇긴 하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아프리카가 현생 인류의 출발 지점이고 문명의 요람이라는 말, 또 현재 아프리카의 경제적 낙후성이나 정치적 불안이 근대 유럽인들에의해 자행된 노예무역과, 식민 통치의 후유증이라는 말 등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깊이 있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써나가는 필력과 정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발췌]

- 여는 글, 실크로드와 설욕의 땅 아프리카

(21)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히끄는 1415년 원정대를 이끌고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현 모로코 영토 세우타(삽타)를 점령했다. 이것은 서구인들의 아프리카 식민화 효시.

(22) 19세기에 이르러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식민화가 고착 상태에 빠지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독립의 붐이 일어나 노예무역이 폐기되자, 그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대상지는 오로지 아프리카뿐이었다. 그리하여 서구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 전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후발국인 독일과 미국은 아프리카에서의 식민지 획득이 더욱 절실했다.

(23) 보어전쟁에 대한 설명 - [보어전쟁에 대한 콘래드의 입장을 담은 편지를 보면 콘래드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음]

(23) 베를린 회의 -- 1) 콩고강과 니제르강은 모든 국가들에게 자유 개방

                            2) 실효지배 - 실효지배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그 지역에 대한 보호령 선포가 가능. 식민지 세력 범위의 확정.

- 베를린 회의는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을 위한 서구 열강들 간의 이해 조정과 식민지 분할의 규범을 마련하는 아프리카 식민화 회의.

3. 인류사의 재난, 노예무역

(26) 약 400년 동안(16-19세기) 지속된 노예무역은 철두철미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로서, 인류의 지탄 속에서 제도로서의 노예무역은 일단 폐지되었지만 그 잔재는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27)아랍-무슬림들이 동아프리카 지역과 노예매매

(28) 9-19세기 - 인도양 노예무역의 특징은 아랍상인들을 통해 잔인한 방법으로 노예를 확보하는 것이다. 무역상들의 사촉을 받은 아랍 상인들은 직접 내륙지대에 들어가 무역거점을 꾸리고 노예들을 생포했다. 상인들이 직접 원주민 마을을 급습하든가, 아니면 우호관계를 맺은 원주민과 연합해 타종족을 급습하는 방법으로 포획했다. 그런가 하면 사전에 밀약을 한 종족에게 무기를 주어 타종족을 공격해 노예를 얻기도 했다.

[인간의 잔인성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들을 해하는 것은 인종을 구분할 것 없이 행해졌다. 흑인들은 대체로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진보와 관련해서 노예 무역의 역사 등을 몇 줄 쓸 수 있을 것이다. 노예 제도에 대해서.]

(29) 서구가 노예 무역한 수 : 대략 1,540만 명.  

(30) 노예무역이 궁극적으로 아프리카의 후진과 재난을 초래했다는 절대적 부정 평가이다. 혹독한 노예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인구는 순리적인 성장을 멈추고 절반으로 감소해 결국 노동력의 대량 상실을 초래했으며, 유럽 제품의 유입으로 아프리카 본토의 정상적인 경제성장의 계기가 봉쇄되었다.

(31) 1817년 영국과 마다가스카르의 추장 간에 노예무역 종식에 관한 협약이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18년 탕가니카에서 최종 금지될 때까지 그 폐지에만도 장장 한세기가 결렸다.

[이 장은 [진보]와 관련해서 굉장히 중요하다.


4.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

(32) 아프리카를 인류의 출현지이자 인류문명의 요람이라고 자신있게 단정

- 고유 문자가 없음. (에티오피아)

(33) '외래설' '영향설' - 아프리카를 '역사 없는 암흑대륙'으로 호도하면서 아프리카의 유구한 역사와 문명을 무시하고, 설혹 역사 문명에서의 어떤 발전적 실존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생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


제1부 - 세계를 향해 눈을 뜨게 한 곳


01 역사의 땅 시나이 반도

02 모세의 40년 광야생활

03 동서 해상교역의 중계지, 알렉산드리아

04 알렉산드리아의 상징, 파로스 등대

(84) 아크나톤 -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 종교개혁가 사회개혁가 (기원 전 1350-1334 재위 추정)

- 태양신 아몸-라를 버리고 유일신 아톤을 섬기는 유일신교를 창시

05 고대 이집트 문명의 건설자, 람세스 2세  

06 이축된 아부심벨 신전

07 나일강 단산

08 파라오들의 무덤군, '왕가의 계곡'
(206) 문화 전파론 - 문화소통론, 문화교류론

13 나세르의 혁명철학 - 이집트

(218) 이슬람 사회주의

(227) 나세르 정권과 박정희 정권의 유사성과 차이점

15 그리스-로마와 자웅을 겨룬 카르타고 (튀니지)

(239) 카르타고가 그리스-로마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대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제 왕국으로서 강력한 국가체졔를 갖추고 활발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덕분이었다.

(241) 포에니 전쟁

17 역사철학의 비조, 이븐 칼둔

(267) 이븐 칼둔 - 역사서설 : 이븐 칼둔은 이 역저에서 자연 조건 등 제반 사회환경이 사회현상 변화를 규제한다는 사회현상의 변화 요인, 개인*계급*민족 간의 역학관계가 역사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회관계와 역사 발전의 상호관계, 그리고 아랍 세계에서는 정주민과 유목민의 교체에 따라 왕조나 문명의 성쇠가 결정된다는 경제생활과 문명성쇠의 함수관계 등 사회 변화와 역사 발전에 관한 근본 문제드를 사상 처음으로 밝혔다.

18 재스민혁명의 암장 - 튀니지가 시초

21 알제리 전쟁, 그 자초지종

(315) 질로 뽄떼꼬르보 - 알제리 전투 La Battaglia di Algeri

24 내 인생의 변곡점

(357) 모로코는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장기간 독립적인 술탄 왕조를 유지. 이드리스, 무라비툰, 무와히둔, 마린, 샤리프, 알라위(현재)

(368) 이븐 바투타

(402) 베르베르인 - 북아프리카 원주민.


제2부 굴종의 땅에서 도전의 땅으로의 여정

29 노예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고레 섬

31 '네그리뛰드'의 선구자, 상고르

(481) 상고르는 현대에 유행하고 있는 서구의 회화나 조각, 음악 등 예술 부분에 온존한 전통적 아프리카 요소들을 발견하면서 이른바 현대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아프리카 문명의 잠재력에 대한 신념을 굳혀갔다.

32 상고르의 민주사회주의


[거의 대부분 유학파들이 독립 후 정권 장악]


2.


41 최초의 인류, 에티오피아인 루시

(120) 지금까지의 발굴에 의하면 인간의 조상이자 최초의 인류라고 하는 루시의 유골화석이 다름아닌 이곳 에티오피아에서 출토되었고 3,000년 전에 이미 문자를 가졌던 문명국 악숨제국이 이곳에서 위용을 떨쳤다.

(123)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여러 고생인류의 시조가 거의 예외없이 아프리카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아프리카가 인류의 발상지이며 문명의 요람임을 말해주고 있다.

(134) 악숨왕국 (BC 975 메넬리크 1세 - 1975) 16세기 오스만 제국에 의한 14년간, 20세기 이탈리아에 의한 5년간 - 총 19년간 외세의 지배

(136) 에티오피아의 문자 - 고대 예멘 시바왕국의 영향. 게에즈 문자. 현대 에티오피아 문자.


44 '세계의 원료창고' 콩고의 민낯

(180) 박물관 입구에 스탠리의 우람한 기마동상

(184) 어느 곳에서나 선교사들이 식민화에 앞장섰거나 적극 동참했다는 사실은 여러 지역의 식민화 역사에서 그런대로 이미 밝혀졌지만 왕왕 같은 전선에 섰던 탐험가들이 식민화와 같은 곰살갑지 않은 일에 한볷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은 별로 밝혀진 바가 없는 점이다.

(186) 스탠리는 레오폴 2세를 대신해 5년 동안 400여명의 추장들에게 통치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받아내 콩고강 유역 적도 부근 열대우림의 주요 지점들을 잇는 거류지(기지)를 건설했다. [Bula Matari - 별명: 바위를 깨는자]

(195) 1960년 6월 30일 벨기에 보두앵 왕의 고별 연설

- 콩고의 독립은 레오폴 2세 각하가 천재적인 능력으로 고안하고, 결연한 용기로 시작해 벨기에와 함께 참을성 있게 지속시켜온 위업의 성과.  

(196) 루뭄바의 반박 연설

 

47. 모부투의 '독수리 기행'

(206) 모부투 - 수장이 결정을 내리면 그게 바로 법이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없다.


48. '어머니 도시', 케이프타운

(225)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항로의 주요 거점인 케이프타운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남아공 영내의 컴벌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트란스발에서 금광이 개발되면서 다시 번영을 되찾았다.

(237) 옥문을 나오면서 만델라는 기나긴 옥중 생활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비록 일흔한 살이지만 나는 내 인생이 이제 막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49 채워지지 않는 지식의 공간

(253) 나뽈레옹은 1815년부터 1821년까지 6년 도안, 51세로 죽을 때까지 이 섬[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었다. 1818년 한반도와 일본 류우뀨우 열도의 해상탐험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른 영국 선장 바실 홀(Basil Hall)은 이 섬에 유배 중이던 나뽈레옹을 방문했다. 홀의 아버지는 나뽈레옹과 빠리 군사학교 동창이다. 홀은 그가 본 조선에 관해 "역사는 유구한 나라인데 한번도 남을 침략헤본 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라고 소개한다. 그러자 나뽈레옹은 "이 세상에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보지 않은 민족도 있단 말인가? 내가 다시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는 그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아가보리라"라고 화답했다.


53. '무지개 나라', 만델라의 꿈

(296) 사면을 받은 백인들은 모진 죄책감에 시달려, 한 사람은 "흑인들이 나를 천만번 용서하고, 하나님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천만번 용서한다 해도 나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나의 머릿속에, 나의 양심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절규하며 "머릿속에 기억 속에 지옥이 있으니"자기의 머리를 폭파시켜달라고 애원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304) 만델라 - 사람이 자신의 신념대로 살 자유를 (사회에 의해) 빼앗겼을 때, 그는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


54 400년 식민고도, 모잠비크 섬

(324)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15세기 전반에 명대 항해가 정화가 7차 하서양(서양 원정) 때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동해안에 위치한 모가디슈까지 항해한 것이 서쪽으로 가장 멀리 간 것인데, 그보다 퍽 남쪽인 여기 모잠비크섬에서 명대 도자기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교류의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의미다.


제4부 아시아의 가까운 이웃

57 마음만은 남겨두고 가라?

(369) 바가모요 시 - 세계문화유산 : 아랍-무슬림들과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감행한 노예무역

아랍-무슬림들이 범한, 만고에 씻을 수 없는 죄행을 강조하고 단죄하고자 하는 것은 이때까지 그 진실이 무언가에 가려져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58 아프리카의 '흑진주', 잔지바르

(373) 잔지바르 - 검은 해안/ 흑진주. ; 아프리카 원주민 반투족과 아랍인들, 인도계무슬림들, 그리고 서양인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다인종*다문화의 융합사회다.


62 체 게바라의 신랄한 아프리카 평언

(441) 식민 통치의 잔재는 아프리카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에 신생 독립국가의 지도자들이 물려받은 각종 제도 속에는 독재정치와 온정주의, 통제정책 같은 식민 시대의 낡은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


64 '세인이 선호하는 땅', 케냐

(481) 카렌 블릭센 - Out of Africa ; 아프리카 원주민에 대한 생각의 차이

카렌은 자신이 선교사를 불러들여 원주민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그애들을 야만 상태에 놓아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럴듯하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를테면 소위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백인들에게 아프리카 원주민은 오로지 그들이 영어 같은 것을 가르쳐 깨우쳐야 할 '교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데니스는 카렌의 이러한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갈파했다. 그는 카렌에게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문명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글로 쓰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이해시킨다. 아프리카 문화를 그 본연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억지로 고치려 드는 것은 무리하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511) 필자가 세계일주 내내 마음속 깊이 간직해온 신념은 '하나의 세계'와 '세계 속의 우리'다. 세계를 편견 없이 보고, 세계를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으로 대하며, 세계를 상부상조하는 인류공동체로 간주하는 것, 즉 세계의 일체성이 필자가 추구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512) 종횡 세계일주를 통해 어렵사리 발견하고 확인하고 선양한 '세계의 일체성'은 인류가 공통적 조상을 갖고 있다는 인류의 혈통적 동조, 세계 역사가 공통적 발전 법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역사의 통칙, 문명 간의 부단한 소통과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는 문명의 통섭, 그리고 숭고한 보편가치를 다 같이 누리려 하고 있다는 보편가치의 공유, 이 네가지 공통요소의 발현이다.

 


[통치자들 대부분 유학파. 기독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