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전체주의
제10장 계급 없는 사회
1. 대중
15) 주 1 - 히틀러에게서 발산되는 거부할 수 없는 이상한 자력--은 실제로 "이 사람의 자신에 대한 광적인 믿음
17)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 것은 다수결의 원칙에서 보면 합법적이었다. 만약 그나 스탈린이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그들은 다수의 주민들에 대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없었고, 안팎의 수많은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으며, 냉혹한 당내 투쟁의 수많은 위험과 용감하게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20)주10- [전체주의 운동의] 유일한 예외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는 러시아식의 전체주의 방법이 유고슬라비아 인구의 상당수를 희생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에 모스크바와 결별했는지 모른다.
21)주11-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가 전체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정치적 반대파를 구속한 수가 놀랍게도 적으며 그들에 대한 형량이 비교적 가볍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25) 단순히 수가 많거나 공공 업무에 관한 무관심 때문에, 아니면 이 둘 다의 이유로 인해 정당이나 자치 정부, 전문 조직 또는 노동조합처럼 공동 관심에 기초한 조직으로 통합될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만 '대중'(mass)이라는 용어는 적용된다. 대중은 잠재적으로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며, 정당에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투표하러 가지도 않는 중립적이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이 다수를 형성한다.
26) 전체주의 운동이 파괴한 민주주의의 두번째 환상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무관심한 이 대중이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또 그들은 정말 중립적이어서 국가의 정치적 삶에서 불분명한 배경을 이룰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운동은 다른 어떤 여론기관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 즉 민주정부가 그 나라의 분명하고 공적인 제도 및 조직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분명하고 무관심한 대중의 암묵적 동의와 관용에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7) 실제로 그들은[전체주의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 의회의 다수가 가짜 다수에 지나지 않고, 의회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형성된 다수가 결코 국가의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반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공화제 헌법보다는 민주적 다수결 원칙을 신봉한 의회 정부의 자의식과 자신감은 훼손되었다.
28) 19세기 폭민 조직과 20세기 대중 운동의 결정적 차이는 쉽게 인지되지 않는다. 현대 전체주의 지도자들이 심리적, 정신적으로 초기의 폭민 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9) 대중은 폭민과 단 한 가지 특징만을 공유한다. 즉, 양자는 모든 사회적 분화와 정상적인 정치적 대의제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폭민--비록 변질된 형태이기는 하지만--이 그렇게 하는 것과는 달리 대중은 지배계급의 기준과 태도를 계승하지 않지만, 그 기준과 태도를 모든 계급의 공적 문제에 반영시키고 다소 왜곡시킨다. 대중적 인간의 기준은 그가 한때 속한 특정 계급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의 모든 계급이 불분명하지만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널리 퍼져 있는 영향과 신념에 의해 결정된다.
30) 유럽 정당 체제 붕괴의 첫 신호는 옛 당원들의 탈당이 아니라, 젊은 세대로부터 당원을 모집하는 데 실패한 것과, 조직되지 않는 대중의 무언의 동의와 지지를 상실한 것이었다. 이 대중은 갑자기 냉담해졌고, 격렬한 적대감을 표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갔다.
32) 저명한 유럽의 학자들과 정치가들은 19세기 초부터 계속 대중적 인간의 출현과 대중시대의 도래를 예언해 왔다. 대중 행동과 대중 심리에 관한 모든 문헌은--고대인들에게는 친숙한--민주주의와 독재, 폭민 통치와 전제정치의 친화관계에 관한 지혜를 대중화시켰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의식이 있거나 지나치게 정치적 의식을 가진 서구세계의 지식 계층이 선동 정치가의 출현에 대비하도록 했고, 기만, 미신, 그리고 야만성에 준비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예견이 어떤 의미에서 실현되었을 때, 자기 이익의 철저한 상실, 죽음이나 다른 개인적 파국 앞에서의 냉소적 또는 권태로운 무관심, 삶의 안내자로서의 가장 추상적인 관념들을 향한 열정적 성향, 가장 명백한 상식의 규칙에 대한 일반적 경멸같이 예상치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은 현상들 때문에 이 예견의 중요성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33) 대중은 민족주의의 감정으로 그 틈새가 메워진 국민국가의 계급 지배 사회에서 왔기 때문에 이 새로운 경험[대중적 인간의 주요 특징은 야만과 퇴보가 아니라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이다]에 속수무책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폭력적인 민족주의로 기울었다.
38) 중산 계급과 소작인 계급의 청산은 1930년대 초반에 완료
- 수백만의 사망자나 강제노동을 위해 끌려간 자들에게 끼지 않은 사람들은 "누가 여기서 주인인가"를 알게 되었고, 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동료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부의 변덕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43) 다른 모든 당과 운동을 비교할 때 전체주의 운동의 가장 뚜렷한 외적 특징은, 개인 성원에게 총체적이고 무제한적이며 무조건적이고 변치 않는 충성을 요구하는 것.
2. 폭민과 엘리트의 일시적 동맹
48) 전체주의 운동의 맹목적인 충성과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적 지지보다 우리 마음을 더욱 어지럽히는 것은 분명 운동이 사회 내의 폭민들뿐만 아니라 엘리트들을 매료시켰다는 것이다. 전체주의가 지지자, 동조자 그리고 등록 당원으로 간주하는 유명한 사람들의 명부를 보고, 예술적인 변덕이나 학자적인 순진함 때문이라고 치부하여 무시한다면 이는 정말로 성급한 일일 것이다.
49) 대중 지도자 - 초기 폭민 지도자들의 특성을 재현
- 직업과 사회 생활에서의 실패, 사생활에서의 타락과 불행이 그것이다. 정치적 경력을 쌓기 이전에 그들의 삶은 실패였다는 사실--구체제의 당에서 좀더 존경받던 지도자들은 순진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그들을 반대했다--은 대중이 그들에게 느끼는 매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요소였다.
50) 전쟁 이전의 시대에 대한 격렬한 불만과 그것을 복구하려는 이도의 모든 시도들--니체, 소렐에서 파레토까지, 랭보와 로렌스에서 융거, 브레히트, 말로까지, 바쿠닌과 네차예프에서 알렉산드로 블록까지--을 간단하게 허무주의의 폭발적 산물로 치부한다면,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적 견해와 도덕 기준들이 속속들이 스며든 사회에서 혐오감이 얼마나 정당할 수 있는가를 간과하게 될 것이다.
54) 제국주의적 엘리트들의 어색하고 꼴사납기 짝이 없는 '과학적'증명들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우주의 법칙이며, 팽창은 정치 장치이기 이전에 심리적 필연성이며, 또 사람은 그러한 보편적 법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증명들이 선행했다.
56) 전후 작가들은 다윈을 읽지 않았지만 사드를 읽었다.
57) 사르트르 - 당신의 존재는 당신의 삶이다 ([위클로]에서)
58) 꼴찌가 일등이 되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이래, 권리 침해에 더해진 모욕은 감수성이 예민한 모든 양심을 괴롭혔다. 언젠가는 정의의 저울이 평형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지면서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불의들이 참을 수 없게 되었다.
60) 인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변인들은 당대의 일반적인 경험에 익숙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쓰라리게 실망했기 때문에, (19세기 이데올로기가 서로를 부정함으로써 생생한 호소력을 소진하고 난 뒤에) 모든 전통 가치와 전제 조건들이 증발해버린 시대적 분위기가 이미 진부한 위선이 되어버린 옛 진리를 수용하는 것보다 명백하게 부조리한 전제 조건들을 수용하는 것을 더 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어느 누구도 이 부조리한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간과했다.
62) 엘리트의 문제와 폭민의 문제가 근본적인 방식으로 동일해졌고, 그것이 대중 문제와 대중의 심성 구조를 미리 보여주었다는 것은 전체주의 운동의 커다란 기회였다. 또한 그 때문에 지성적 엘리트와 폭민의 일시적 동맹이 나타날 수 있었다.
제11장 전체주의 운동
1. 전체주의 선전
74) 주 4- 힘러는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제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도자의 분병한 바람이고 명령이다"는 사실을 1941년 봄에 이미 알고 있었다.
77) 세계에서 제일 좋은 비누
- 광고인의 상상적인 과장 속에는 실제로 이미 폭력 요소가 들어 있다. 이 특정 상품의 비누를 사용하지 않는 소녀들은 평생 동안 여드름을 지닌 채 살 것이며 남편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 뒤에는 난폭한 독점의 꿈이 도사리고 있다.
78) 기업 광고와 전체주의 선전의 두 경우에서 과학은 분명 권력의 대체물일 뿐이다.
- 나치 지도자와 스탈린의 신조
"우리가 자연과 생명의 법칙들을 더욱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준수할수록 . . . 그만큼 더 전능한 하느님의 뜻에 따르게 된다. 전능한 하느님의 의지를 더욱더 많이 통찰하게 되면, 우리의 성공은 더 커질 것이다. 이것을 아주 조금만 변화시켜서 다음과 같은 두 문장으로 스탈린의 신조를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와 계급 투쟁의 법칙을 더욱더 정확하게 인정하고 준수할수록 더욱더 변증법적 유물론을 따르게 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더욱더 많이 통찰하게 되면 우리의 성공은 더 커질 것이다."
80) "왕은 국민을 지배하고, 이해관계는 왕을 지배한다."
82) 전체주의 운동 구성원들의 열광은 스스로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중의 이기주의의 결여에서 나온다.
- 나치 선전은 "패배할 경우를 대비하여 지도자께서 지혜롭게 가스에 의한 쉬운 죽음을 독일 국민에게 준비해 두셨다"는 약속으로 이미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했다.
84) 1939년 1월 독일 제국의회에서 행한 히틀러의 성명
- 나는 오늘 다시 한번 예언을 하고자 합니다. 유대인 금융업자들이 . . . 사람들을 세계 대전으로 내모는 데 성공할 경우, 그 결과는 유럽에서 유대인 인종의 전멸일 것입니다.
85) 사실은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권력에 철저하게 의존.
-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세계에서만 전체주의 통치자는 자신의 모든 거짓말을 실현할 수 있고 예언을 현실화시킬 수 있기 때문.
86) 우리는 유전학의 판결에 따라 우리 국민의 삶과 우리의 법률을 만든다.
- 대중은 집단 이익 때문에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은 아니다.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운동 또는 성공할 수도 있는 특수한 사업보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운동이나 어떤 사업이든 상관없이 성공 자체이다.
89) '사실주의', 상식 및 모든 "세계의 개연성"(버크)에 대해 대중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그들이 원자화되었고 사회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그들은 상식이 통하게 만드는 틀을 가진 공동체적 관계의 전체 영역을 상실했다.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고향 상실의 상황에서 자의적인 것과 계획적인 것, 우연적인 것과 필수적인 것의 상호의존은 더이상 작동할 수 없었다.
91) 모든 정당 및 여론 기관들이 더욱 철저하게 유대인 문제에 관한 논의를 회피하면 할수록 폭민은 더욱더 유대인들이 권력의 진정한 대변인들이며 또 유대인 문제는 전체 시스템의 위선과 부정에 대한 상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 유대인을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것은 대체로 중세에서 유래하는 미신적인 기억들과 자취 탓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유대인들이 해방된 이래 유럽 사회에서 담당한 모호한 역할과 밀접하게 연관되다.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전후 시기에 유대인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다는 점이다.
98) 독일 국민에게 좋은 것이 옳은 것이다 - 이것은 유대 민족에 이익을 주는 것은 모두 도덕적으로 옳고 신성하다, 는 문구에서 베낀 것이다.
99) 대중에게 대체로 호소력이 있었던 것은 [시온주의] 의정서(위조 문서)에 들어 있는 세계 음모의 모티프였다.
100) 유대인의 세계 통치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망상은 미래 독일인의 세계 지배에 관한 환상의 토대가 되었다.
106) 독일 국민들 중에서--독일 국민의 90퍼센트는 아마 한때라도 진지한 동조자였다--자백하거나 신념에 가득 찬 나치를 한 명이라도 찾으려고 헛되어 노력한 연합군의 경험을 인간적 약점이나 추잡한 기회주의의 징후로 간단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나치즘은 너무나 완전하게 '실현되어서' 이데올로기의 내용은 더이상 독립적인 교리 체계로 존립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지성적 실존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의 파괴는 거의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으며, 그 중에서도 믿은 사람들의 광신주의는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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