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봉 : 2001년
지금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다섯 편 보았는데, 이 [이웃집 토토로]는 가장 처음으로, 그것도 극장에서 직접 본 영화이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언제 보았는지(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한 것은 2001년도였으니까 그 무렵일 것이다) 또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다만 지금은 [CGV 하계]로 바뀐 [건영 옴니 시네마]에서 봤다는 것만 떠오른다. 그래도 굳이 떠오르는 것을 들어보자면, 토토로와 뭔가 '따뜻한 느낌'이다. 사실 며칠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았기 때문에 그 전에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게 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 푸근함이나 따뜻함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 작품은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는 처음으로 1953년 도코로자와 시 마쓰고 마을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영화의 내용 또한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단순한 편이다.
사츠키 가족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녀의 엄마가 퇴원 후에 지낼 만한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를 온다. 4살인 메이와 초등학생인 사츠키는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생명체들을 보게 되는데, 먼저 메이가 집 앞 숲에서 거대한 토토로를 만나게 되고, 그 다음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빠를 기다리던 사츠키도 토토로를 만난다. 집으로 외출 나오기로 되어 있던 엄마가 감기 때문에 오지 못하게 되자 메이는 옥수수를 들고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하다 길을 잃어버린다. 사츠키가 메이를 찾아 헤매는 와중에 저수지에서 아이의 샌들이 발견되기도 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고, 급기야 사츠키는 숲으로 토토로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토토로는 사츠키를 고양이 버스에 태워 먼저 메이가 있는 곳으로 가고 그 다음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태워준다. 두 아이는 나뭇가지에서 엄마와 면회온 아빠를 보면서 안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엄마가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도 있다.)
이 영화가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유는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이라는 보편적인 현실과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라는 비현실적인 존재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놀라운 솜씨 덕택에 무리없이 잘 연결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이라는 것이 우리의 개인적 소망이나 불안 등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우리는 성장하면서 깨닫게 되지만, 위니컷(Donald Winnicott)의 용어를 빌자면 어린 시절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제공해주는 편안하고 위안을 주는 환경으로 인해 우리 안에는 "주관적 전능감"이 자리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 개인적인 해석으로 볼 때 이 영화에서 토토로는 이러한 "주관적 전능감"이 빚어낸 환상 혹은 부재한 어머니를 대신하는 그런 존재이다. 더 나아가 개념적으로 꼭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토토로는 다시 한 번 위니컷의 용어를 빌자면 "중간 대상"과 연결을 시켜볼 수도 있을 듯하다(주2).
영화 속에 나오는 비현실적인 부분을 어떻게라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사츠코와 메이가 실제로는 죽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현실과 환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에서 잠시 벗어나, 어려울 수 있는 현실 속에서도 초월적인 힘으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토토로와 같은 존재에게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찾을 수 있다면, 또 그러한 따뜻함과 포근함이 냉혹한 현실을 이겨나가는데 힘이 된다면 좋겠다.
이 영화와 연관해서 떠오르는 영화는 1985년에 나온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스웨덴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이다. 이 영화처럼 단순히 '어머니의 부재'가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12살 소년 잉게마르의 좌충우돌하는 모습과 그 아픈 내면 세계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 하나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것으로 일본에서는 만화 영화가 그렇게 길지 않으면 두 편을 동시 상영하는 것의 관례인 모양인데, 그래서 [이웃집 토토로]와 함께 상영된 영화가 타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이의 묘]라는 작품이다. 2차 세계 대전 직전부터 직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연합군의 공습으로 어머니를 잃은 남매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웃집 토토로]가 냉혹한 현실을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초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라면, [반딧불이의 묘]는 현실의 엄혹함을 끝까지 추적한, 그러면서도 두 남매의 끈끈한 가족애를 잘 살려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1) 한 유튜버는 영화 공식 팜플렛에 이렇게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유튜버는 영화 속에 나오는 달력을 바탕으로 그 시간적 배경을 1952년이라고 하고, 공간적 배경 또한 고양이 버스의 목적지로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도코로자와 시는 도쿄 도심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2) Psychoanalytic Terms and Concepts에서는 "중간 대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The transitional object is the infant's first "not-me" possession, something inanimate but treasured (usually a small soft blanket or toy), which the child uses in the course of emotional separation from the primary love object at times of stress, often on going to sleep. The transitional object often must have a characteristic odor and feeling thought to be reminiscent of the mother. It preserves the illusion of the comforting and soothing mother at times when the mother is unavailable; it promotes autonomy in the toddler, for the transitional object is under his or her control, whereas the mother is not. The original object is relinquished by age two to four, but later toys may continue to comfort. (207)
중간 대상은 유가가 갖게 되는 내가 아닌 최초의 소유물로서, 주로 잠자리에 들 때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의 시기에 아이가 일차적 애정 대상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해 가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생명력은 없지만 소중히 여기는 어떤 것(보통 부드러운 담요나 장난감)을 가리킨다. 중간 대상은 주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고유한 냄새와 느낌을 갖는다. 이것은 어머니가 옆에 없을 때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어머니의 환상을 유지시켜 준다. 어머니는 자신의 통제 아래 있지 않지만 중간 대상은 자신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아장이에게 자율성을 증진시킨다. 원래 대상은 두 살에서 네 살 사이에 단념하게 되지만, 이후 장난감들이 계속해서 위안을 줄 수 있다. [정신분석 용어사전]. 이재훈 외 옮김. 약간 수정.
[연상]
- - My Life as a Dog / 미국 영화 중 보이지 않는 존재를 친구로 지니고 있는 영화. Harvey - James Stewart(1950) [Youtube]
- 유년 시절, 보편성
- 이 글이 진도가 잘 안 나가는 이유는 너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내 능력 이상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참고]
- 구체적인 시공간을 바탕(1950년대 초반, 일본] 1953년(1952년?), 도코로자와 시. 결핵
-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1972)의 리메이크에 가까움.
- 시골이라는 공간
- 상상속 현실
- 보편적 불안
- 사야마 사건 (고양이 귀신, 너구리 유령) 1963년 5월 1일
- 주관적 전능감 도널드 우즈 위니컷 Winniecott / 자신의 욕망이 대상을 창조한다는 환상
- 중간대상(trainsitional object) 전능감과 통제감의 환상이 박탈되는 것을 거부하며 하나의 대상에 강한 집찬/ 분리 불안/ 중간 과정
- 대상관계이론
- 분리 개별화
--토토로 - 토로루
-- 미야자키의 어머니 또한 그의 어린 시절 오랫동안 결핵을 앓음.
[메이, 사츠키] 4살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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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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