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텔담 중앙역에서
몇 발자국 옆으로 비켜선 저쯤
쬐그만 두 어깨에 간신히 별 두 개를 올려
그 무게만도 지탱키 어려운
성니콜라이 호텔의 구석방
층계를 딛고 이 다락방을 벗어나
난 어엿한 그곳 사람으로 전차를 기다린다
5번과 17번을 떠나보낸 다음
덜커덩거리며 다가서는
2번전차에 올라
거스름돈도 차분히 받아쥐고
라이드 스트라드
네 개의 흙탕물이 골로 트인
운하를 내려다 보다가
뮤즘 플라인의 한 모서리
급히 두 발을 땅에 던진다
큼직한 유리창 앞
검정의 두 사람
반바지에 런닝셔츠 차림의
앳된 처녀애들 등 뒤에 붙어
나도 차례로 넓은 마루에 나선다
벽엔 Vincent Van Gogh
그 쯤의 화가가 날 기다림직도 한
그러나 글자들만 소복히 쌓여
악동은 보이지 않는다
쏜살같이 삼층으로 치달아
막 날개쭉지를 펴
공중곡예를 시작하려는 까마귀떼들
짐승의 울음소리를 붙들어매고
아직도 활활 불이 붙고 있는
태양과 잘 익어가는 밀밭
그 아래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난 훔친다
1987년 5월 25일
오전 10시를 조금 지나
맑고 깨끗한 초여름의 하늘을
가슴엔지 머리엔지
아, 작은 구멍으로밖엔 볼 수 없는
네덜란드의 세든 집
그의 고국 미술관에서
나도 잘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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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미술관을 방문한 느낌을 산문적인 어조로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림이 준 인상들도 소개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시적인 비유나 감흥을 주는 구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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