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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귀자르기 -- 고호와 함께 -- 신진

by 길철현 2022. 3. 15.

양말을 벗으면

고손내 난다

좌심방서 쏘아대는 신선한 석탄향

코끝을 대면

드러나는 귀가 부끄럽다

내게 먹을 것 주고

사랑을 주는 테오도르, 나의 형제여

너는 모르리 사랑을 아직 모르리

사랑이라면 나를 치리라 매달고 나를 치리라

내 삶이 파랗게 썩어

밀내로 터질 때까지.

보리나주 탄광의 굶주린 주민의 굶주린 눈

굶주린 갱도의 굶주린 곡괭이의 굶주린 비명

그렇구나, 함께 벗고 주리던 사랑이 매몰된 갱도

두려워하며 떨며 나를 치던 그 눈빛 아름답구나.

저녁답 별이 하나 둘 깜박이며 잠시 그치는 연주

잠시에 오랜 절망이 반음으로 떠오르고

어중간한 음계에서 사정없이 허물벗는 맨몸을 보았느냐.

사랑의 마른버즘 불에 대어 뻘겋게

타오르는 고통의 축제일을 보았느냐.

여기는 어둠이 닿지 않는 아름다운 아를르 화원

잘 씻긴 공기가 피속에서 삭는다

노상 맛보는 오랜만의 이 여유가 다하기 전에

오늘 나는 귀를 자른다

나를 치라, 테오도르 내가 너를 더 의심하기 전에,

보이는대로 보고 싶구나

내 눈을 더럽히는 귀를 자른다

아아 보이는대로 보고 싶구나

귀야 너는 너대로 듣는대로 들어라

눈을 닦아 폐광의 빈속에서

다시 눈뜨는 빛을 보리라

양말을 벗고

반짝이는 석탄의 단단한 발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