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예측이 허락받지 못한
세상은 종이 한 장으로
시들어 가고
우리들의 유희는 강을 건너
빈 손으로 피리를 분다.
바람이
제 몸에 상처를 입혀
하나 둘 나무의 키를 지우고
하나 둘 풀의 뿌리를 지우고
하나 둘 발자욱을 지운다.
지금껏 지워지지 않은
애정이나 순결이 이싸면
마른 입술을 깨물어 붉은 피로
색인을 하여 간직할 일이다.
건너온 강은
뒷전에서 서성이고 땅과 하늘이
몸을 비벼 잠들어
잠들어 돌아설 때
진리는 머리숙인 갈대에게 있는 걸까
우리들
가난한 자의 유희는
사물의 세워진 이정표를 설명하지 못하고
간혹 빗겨구르는 조약돌의 웃음을
홀린 듯 보기도 한다.
[내재율 1호](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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