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두 장 (020719 - 수정 211129)
어릴 적에 살던 집 큰방에는 꽤 넓은 다락방이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공간이었는데, 사진들을 되는대로 담아두던 큼지막한 종이 상자도 하나 있었다. 원래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흐린 기억으로 내의 포장용 상자보다 좀 컸던 그 상자는 덮개가 짙은 자줏빛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덮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배운 것도 없었고 가진 것은 더더욱 없어서 남들이 피하는 비천한 일을 해야만 했던 부모님이라 우리가 예전에 흔히 그랬듯이 사진들을 앨범에다 차곡차곡 정리할 정서적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정신없이 혼자 내달리는 시간을 붙잡아 매어두고 싶은 소망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으리라.
삼십 년 이상된 해묵은 흑백 사진들, 그 중에서도 내가 주연 아니면 최소한 공동 주연을 맡고 있는 사진들은 언제부터인가 내 앨범으로 자리를 옮겨왔다(몇 장 안 되는 나머지 사진들은 사라지고 없는 듯하다). 그런데 그 중 두 장은 사진 속의 주인공이 나인지를 확신하기가 힘이 들어서, 앨범에 꽂지 못하고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장은 한두 살 된 아기가 나름 깔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는 표범인데 몸통과 다리는 소를 연상시키는 그런 모조 동물을 올라타고 앉아 찍은 사진이었다. 집 마당인지 아니면 공터인지 잘 분간이 가지는 않는데 흙으로 된 바닥에다 블록 담벼락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었다. 다른 한 장은 지금의 나보다 젊은 아버지와 앞의 사진에 나오는 아기보다 적어도 몇 개월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아기--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앞의 사진에서는 아기의 눈동자에 초점이 별로 또렷하지 않고 멍한데 반해 이 사진에 나오는 아이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뭔가를 응시하는 듯한 것이 좀 성숙한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가 런닝만 걸친 채 아버지 옆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 속의 공간 또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데 이 사진은 그 내용이 흥미롭다. 아버지와 아기 앞쪽에는 강아지 다섯 마리가 세숫대야만한 큰 밥그릇에 대가리를 처박고 식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유독 한 마리만이 밥에는 관심이 없는 듯 오른편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뒤편에는 헛간인지를 배경으로 아마도 이들의 어미개로 보이는 강아지들보다 털 빛깔이 더욱 짙은 잡종개--흑백 사진이라 정확한 색깔은 알 수 없는데--가 혀를 잔뜩 내문 채 서있다(아버지는 개를 많이 길러서 우리 집은 별칭이 ‘개 많은 집’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애완용으로 개를 기른 것은 아니고 일종의 부업이었다). 그리고 사진의 왼쪽 제일 뒤편 구석에서는 얼굴 부분이 잘린 여인이 아마도 정지(부엌)문을 막 나오려 하고 있다.
이 당시만 해도 사진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밥벌이로 하던 사진사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찍은 사진일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나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우선 사진이 흑백인데다가 크기도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3*5 인치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얼굴의 특징을 뚜렷이 알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마가 답답할 정도로 좁은 데 반해 사진 속의 주인공은 이마가 시원한 편이었다. 내 생각은 엉뚱하게도 이 사진의 주인공이 친척 중 누구일 것이라는 쪽으로 흘렀다. 두 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미간을 찌푸린 표정이 나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93년도에 돌아가셨으니까 더 이상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도 없게 되고 말았지만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쉽사리 판명이 날 일이었는데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정이 또렷해 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의 전처소생인 두 명의 이복누나들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그 이후의 일들에 따른 혼란이나 불안, 분노 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로서는 이복누나들이 우리 집으로 온 것이 정확히 언제의 일인지는 어머니도, 이복누나들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나로서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추론에 따르자면 내가 여섯 살 무렵의 일인 듯하다. 이복누나들은 친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경제적 형편 때문에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는지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누나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어린 내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나는 이복누나들이 극도로 싫었고--이후 나는 누나들의 존재를 될 수 있으면 감추려 했다-- 그것은 또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커져 갔다. 아버지로서도 이 일은 곤혹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지 누나들에 대해 설명이 있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 일을 한 번도 해주시지 못했고--내 기억이 미치는 한에서는--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 또한 극도로 악화되어 나는 일방적으로 아버지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말기까지 했다.
내가 두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서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표면적인 가장 큰 이유는 대학시절 이후 집을 떠나 있게 되면서 부모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겠으나, 그 이면에는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 내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이복누나들처럼 아버지가 낳은 내가 모르는 아이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감당할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이성적인 불안이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그런 사진이 아무렇게나 집에 굴러다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으나 사람의 생각이 어디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이겠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내 안의 불안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기 때문인가? 며칠 전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대구 집으로 내려갔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진들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해묵은 궁금증을 끄집어 내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의 주인공이 둘 다 나라는 걸 밝혀주셨다. 그리고, 표범을 타고 있는 사진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내가 돌을 맞은 기념으로 촬영한 돌 사진이라는 것도.
사진 두 장 (020719 - 수정 151129)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집 큰방에는 꽤 넓은 다락방이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을 넣어두는 공간이었는데, 사진들을 되는대로 담아두던 큼지막한 종이 상자도 하나 있었다. 원래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흐린 기억으로 내의 포장용 상자보다 좀 컸던 그 상자는 덮개가 짙은 자줏빛이었던 듯한데 어느 순간부터 덮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배운 것도 없었고 가진 것은 더더욱 없어서 남들이 피하는 비천한 일을 해야만 했던 부모님이라 우리가 예전에 흔히 그랬듯이 사진들을 앨범에다 차곡차곡 정리할 정서적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정신없이 혼자 내달리는 시간을 붙잡아 매어두고 싶은 소망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으리라.
삼십 년 이상된 해묵은 흑백 사진들, 그 중에서도 내가 주연 아니면 최소한 공동 주연을 맡고 있는 사진들은 언제부터인가 나의 앨범으로 자리를 옮겨왔다(몇 장 안 되는 나머지 사진들은 사라지고 없는 듯하다). 그런데 그 중 두 장은 사진 속의 주인공이 나인지를 확신하기가 힘이 들어서, 앨범에 꽂지 못하고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장은 한두 살 된 아기가 나름 깔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는 표범인데 몸통과 다리는 소를 연상시키는 그런 모조 동물을 올라타고 앉아 찍은 사진이었다. 집 마당인지 아니면 공터인지 잘 분간이 가지는 않는데 흙으로 된 바닥에다 블록 담벼락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었다. 다른 한 장은 지금의 나보다 젊은 아버지와 앞의 사진에 나오는 아기보다 적어도 몇 개월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앞의 사진에서는 아기의 눈동자에 초점이 별로 또렷하지 않고 멍한데 반해 이 사진에 나오는 아이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뭔가를 응시하는 듯한 것이 좀 성숙한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 한 사내 아기가 런닝만 걸친 채 아버지 옆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 속의 공간 또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데 이 사진은 그 내용이 흥미롭다. 아버지와 아기 앞쪽에는 강아지 다섯 마리가 세숫대야만한 큰 밥그릇에 대가리를 처박고 식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유독 한 마리만이 밥에는 관심이 없는 듯 오른편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뒤편에는 헛간인지를 배경으로 아마도 이들의 어미개로 보이는 강아지들보다 털 빛깔이 더욱 짙은 - 흑백 사진이라 정확한 색깔은 알 수 없는데 - 잡종개가 혀를 잔뜩 내문 채 서있다. (아버지는 개를 많이 길러서 우리 집은 별칭이 ‘개 많은 집’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애완용으로 개를 기른 것은 아니고 일종의 부업이었다.) 그리고 사진의 왼쪽 제일 뒤편 구석에서는 얼굴 부분이 잘린 여인이 아마도 정지(부엌)문을 막 나오려 하고 있다.
이 당시만 해도 사진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밥벌이로 하던 사진사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찍은 사진일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나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우선 사진이 흑백인데다가 크기도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3*5 인치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얼굴의 특징을 뚜렷이 알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마가 답답할 정도로 좁은 데 반해 사진 속의 주인공은 이마가 시원한 편이었다. 내 생각은 엉뚱하게도 이 사진의 주인공이 친척 중 누구일 것이라는 쪽으로 흘렀다. 두 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미간을 찌푸린 표정이 나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93년도에 돌아가셨으니까 더 이상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도 없게 되고 말았지만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쉽사리 판명이 날 일이었는데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정이 또렷해 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의 전처소생인 두 명의 이복누나들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그 이후의 일들에 따른 혼란이나 불안, 분노 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로서는 이복누나들이 우리 집으로 온 것이 정확히 언제의 일인지는 어머니도, 이복누나들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나로서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추론에 따르자면 내가 여섯 살 무렵의 일인 듯하다. 이복누나들은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경제적 형편 때문에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는지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누나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어린 내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나는 이복누나들이 극도로 싫었고 - 이후 나는 누나들의 존재를 될 수 있으면 감추려 했다 - 그것은 또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커져 갔다. 아버지로서도 이 일은 곤혹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지 누나들에 대해 설명이 있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 일을 한 번도 해주시지 못했고 - 내 기억이 미치는 한에서는 -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 또한 극도로 악화되어 나는 일방적으로 아버지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말았다.
이야기가 가족사 쪽으로 지나치게 나간 느낌도 없지 않은데, 내가 두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서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표면적인 가장 큰 이유는 대학시절 이후 집을 떠나 있게 되면서 부모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겠으나, 그 이면에는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 내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이복누나들처럼 아버지가 낳은 내가 모르는 아이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감당할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이성적인 불안이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그런 사진이 아무렇게나 집에 굴러다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으나 사람의 생각이 어디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이겠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내 안의 불안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기 때문인가? 며칠 전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대구 집으로 내려갔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진들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해묵은 궁금증을 끄집어 내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의 주인공이 둘 다 나라는 걸 밝혀주셨다. 그리고, 표범을 타고 있는 사진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내가 돌을 맞은 기념으로 촬영한 돌 사진이라는 것도.
'자작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임스 홈스 사건을 보고 (0) | 2016.04.18 |
---|---|
오징어와 낙지 혹은 문어, 그리고 언어에 대한 몇 가지 단상 (0) | 2016.04.14 |
죽령에서 만난 사람 (0) | 2016.03.13 |
운악산 삼거리 (0) | 2016.03.10 |
쌍문역 연가 (3) | 2016.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