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홈스 사건을 보고> (120725)
며칠 전 미국에서 또 한 번의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현재까지 열두 명이 죽고 육십 여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인 제임스 홈스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완결편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Dark Knight Rises)를 상영하던 극장에 들어가 이 영화의 악당인 조커 흉내를 내며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했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몇 년 전에 그러한 참사를 일으킨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의 국적이 한국이라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편치 않게 한 적도 있었다)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데도, 왜 미국은 개인의 총기 소유를 허용하는 것일까? 물론 이 점은 미국의 역사나 문화적 맥락을 살펴볼 때 그 불가피성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공격적인 본능 또한 교육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이러한 사건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사건을 일으킨 24살의 제임스 홈스가 의대 박사 과정을 중퇴한 지적으로 상당한 재원이었다는 점은 그러한 예측에 더욱 힘을 싣는다.
한 개인이 저지르는 이러한 끔찍한 범죄 행위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히지만, 자연이 불러오는 재앙이나, 더 나아가 국가 간 혹은 국가 내에서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진 경우에는 이런 개인적인 범죄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사망자의 수는 가히 천문학적이다(인류 역사상 가장 무서웠던 자연 재앙은 중세의 흑사병으로 당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흑사병이 창궐하던 몇 년 동안에 대략 2천만 명을 상회하는 사람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2차 세계 대전은 가장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불러일으킨 전쟁으로 5-7천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까, 제임스 홈스의 끔찍한 범죄 행위가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인류가 우리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자연 재앙 앞에 노출되어 있음은 물론--아마도 가장 큰 두려움은 [딥 임팩트]나 [2012] 등의 영화에서 잘 보여주는 인류 절멸의 위기 상황--인간 스스로도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력이 생산해 낸 핵무기로 스스로를 쉽게 끝장 낼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끊임없이 전쟁을 저지르는 것을 볼 때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자멸하지 않은 것이 때로는 이상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이 저지르는 이러한 반사회적인 행동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얼마 전 조선족인 오원춘이 젊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을 두고 한 동안 시끄러웠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다면 20여명을 살해한 희대의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 있다) 그 사건이 그렇게 시끄러웠던 것은 경찰의 초등대응이 너무나도 미숙했던 것에 대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반응 이면에는 나도 그처럼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라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을 듯하다. 냉정한 이야기이지만 통계적인 수치만을 놓고 볼 때 개인이 저지르는 이런 범죄 행위로 인한 인명의 손실은 앞서 이야기한 자연의 재앙이나, 전쟁 또는 각종 사고로 인한 인명의 손실에 비할 바가 아닌데도 사람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 책임 소재가 일차적으로 한 개인이라는 분명한 대상에 집중되기 때문일 것이다. 태풍이 내 가족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한다면(당연한 말이지만 당사자가 죽은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어떠한 논의도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자연 혹은 자연을 주관하는 신을 원망할 수야 있겠으나, 그렇다고 자연이나 신이 어떤 반응을 보인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체로 체념하고 마는 쪽일 것이다. 전쟁의 경우에는 서로 상대방을 원망할 것이며, 승전국은 모든 책임을 패전국에게 떠넘기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사건이다. 제임스 홈스의 경우를 두고 본다면 비록 그가 몇 달에 걸쳐 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불과 몇 십 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상황은 끝났고,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홈스 자신이 자살을 한 것도 아닌데다--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에서 그러한 범행을 저지른 경우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은 또 한 번 떠들썩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피해자와 동일시하고 범인인 홈스는 악의 화신, 이해를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타자로 취급할 것이다. (내 자신이 혹은 내 가족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지금처럼 차분하게 글을 쓸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나는 거리를 두고 평소에 내가 가졌던 생각을 쫓아가 본다.) 과연 그와 같은 존재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별종의 인간이거나, 아니면 흔히 하는 말로 망상에 사로잡혀 현실과 자신의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치광이 상태에 있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그가 저지른 파괴적 행위가 그에게 가져다 줄 쾌감--그의 총에 죽은 사람들, 부상당한 사람들, 그리고 가족이나 친척, 지인 등이 입은 정신적인 외상 등등의 피해는 또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차원이겠지만--이라는 것은 그가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을--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으나--생각할 때는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혹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행동은 맹수가 인간을 해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인간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이성의 힘으로--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간단하지 않은데--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원적인 충동 혹은 본능에 좌우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결론을 짓고,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 홈스와 같은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가? 미국의 국회의원인 깅그리치는 이 사건에 대해 총기에 대한 강한 통제와 엄격한 처벌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누가 봐도 이런 사건이 있은 뒤에 나오는 의례적인 반응 이상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말하듯 사회가 주입하는 교육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한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사회가 주입하는 교육이 정당하다고만 볼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기득권층이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을 이용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나 내 가족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우리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여타 다른 동식물에 비해 환경을 좀 더 제어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적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외부 상황에 대한 일정 정도의 믿음--위니캇이 말한 자신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착각(정확한 용어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이 없이는 매순간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지의 위험을 감수하고 삶을 살아간다. 여기서 논의의 차원을 좀 확장해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나는 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 아니 좀 더 생각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본다면--이야기가 좀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드는데--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가 지닌 언어로 수렴해서 해석하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금하고 있는 이 모든 작업이 언어라는 그물 혹은 감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신뢰이든, 그것의 부족함에 대한 이야기든 언어를 떠날 수 없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또 언어를 넘어선 부분--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에 대해서도 우리가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려고 할 때에는 언어의 차원으로 떨어지고 만다. 어쨌거나 내 생각에 경계해야 할 것은 기존의 언어를 절대시하는 경향이 아닌가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물고 늘어져야 할 부분이다. 어렴풋하게 다가오는 것은 있으나 결국에는 혼돈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가슴이 아프고 울음이 솟는다. 이번 사건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가족이나 친지, 지인들을 생각할 때. 그리고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홈스를 생각할 때도. 그렇지만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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