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가 많이 밀려 밀린 여행기를 작성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3월 초에 백령도에 다녀온 이후로 숙박을 포함하는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았으니 가볍게라도 코에 바람을 넣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짐을 챙겨 애마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구이저수지였지만 내 여행이 항상 그러하듯 언제 도착할지, 꼭 그곳에 갈지는 미지수였다. 구이저수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기억이 다소 흐릿하지만 아마도 KBS [생생정보]의 한 코너인 [미스터 리가 간다]에서 '경각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박차고 올라 하늘을 날다가 드넓은 저수지를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 저수지를 검색해 보았더니 상당한 규모였다.
지난 3년 정도 나는 전국의 저수지들--크고 이름난 것에서부터 웅덩이 수준의 소류지까지--을 찾아다녔는데, '물이 일정 정도 이상으로 고여있는 곳'을 가리키는 호수와 저수지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를 구분하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난제였다. 호수가 원래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을 가리키고 규모도 큰 편이긴 하지만, 자연호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했다. 소양호나 충주호 등의 다목적댐은 그 규모면에서 일반 저수지가 따라갈 수가 없다는 점에서 하나의 구분점이 되지만, 작은 규모의 호(수)는 저수지보다 작은 경우도 여럿 있고, 호와 저수지라는 명칭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하여 사실상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동해안의 석호들 화진포(호), 송지호, 영랑호, 청초호, 향호, 경포호 등에는 저수지라는 말을 쓰지 않으므로 그게 또 하나의 기준은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숫적으로 몇 개 되지 않는다).
아침 일찍 떠났으면 했으나 처리해야 할 집안일들 때문에 집을 나선 시각은 11시가 넘어서였다. 남대구IC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12번)를 타고 달리는데 졸음이 쏟아져 [거창한휴게소]에 들러 잠시 낮잠을 잤다. 그리고는 휴게소 편의점에 들러 캔커피와 과자를 사려했는데, 따뜻한 음료 기기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지 미지근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냉커피가 나을 듯해 사 가지고 나오면서 직원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카운터의 직원은 고장 난 사실도 모르고 있었고, 안쪽에 있던 다른 직원이 '무슨 일인지 작동이 안 되네요'라고 했다. '고장'이라고 써놓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이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앞으로는 미인산과 오도산, 그리고 휴게소 뒤편에 자리한 비계산과 그 너머의 우두산(930미터인 미인산(혹은 미인봉)을 제외하면 모두 천 미터가 넘는 고산이다)이 있고, 또 전방으로 멀리 박유산, 금귀봉 등이 있는데 그 중간 가조면이 있는 곳이 분지로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이한 느낌을 주었는데, 유홍준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준 감동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산중의 분지인 거창 들판은 참으로 평화롭고 풍요롭다. 동쪽에서 거창으로 가려면 필연적으로 팔팔고속도로(보충: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가게 되고, 대부분은 합천터널을 지나 지금은 거창휴게소라고 부르는 가조휴게소에서 쉬어간다. 가조휴게소는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갖고 있다. 방금 터널을 지나올 정도로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으면서 발아래로 거창의 한들이 저 멀리까지 펼쳐지니 그 시원스런 조망에 가슴이 통쾌할 정도다. (6권. 236-37)
구이저수지로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일단 함양읍에 들러 읍내 구경도 좀 하고(함양 시내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는 듯하다) 점심도 먹기로 했다. 함양IC를 빠져나온 뒤 고운로를 따라 읍내로 들어갔는데 주차할 곳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광주대구고속도로뿐만 아니라 통영대전고속도로(35번)도 그 곁을 지나 함양은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고, 그래서 아파트도 꽤 많이 들어와 제법 규모가 있었다. 유홍준은 교통이 발달하자 '외지 사람들이 함양으로 많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함양 사람들이 대전 '홈에버'에 가서 장을 보는' '역류현상'이 일어났다고 반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했다(6권 292).
사실 지난 2월 3월 두 달 간은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했고, 3월 하순에는 코로나인지 감기인지로(대퇴부 골절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동안 정점으로 치닿던 오미크론 감염이 병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머니와 같은 병실에 있던 분들이 모두 감염되었다. 어머니도 내가 동생과 교대를 한 다음날 감염되었다. 나도 병원에서 나온 다음날 목이 따가운 것이 코로나인 듯했으나 자가검진을 해보니 음성이었다) 또 며칠 고생을 했는데, 며칠 전부터는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서인지 소화불량이 심했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에 점심은 건너고 일단은 화장실부터 찾아야했다.
[금성아파트] 옆 교산길에 차를 주차하고 본격적으로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이때 시각은 대략 12시 40분 경.
보물인 진도의 [금골산오층석탑]도 금성 초등학교 교정에 있어서 놀랐는데, 이 불상 또한 나를 놀라게 했다.
아픈 배를 안고 충분히 함양을 거닌 듯하여 떠나려는데 위천이 또 나를 막았다.
[어린이 공원]에서 드디어 화장실을 발견하여 아픈 속을 풀어놓았다. 멀리 보이는 산은 대봉산 자락인 듯.
함양 읍내를 떠나려는 나를 마지막으로 잡은 것은 [대덕저수지]. 소류지에 지나지 않고 따로 둘레길도 없지만 물이 맑고 주변의 산과 어울려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참고]
호수와 못은 어떻게 구분할까
호(湖), 지(池), 담(潭), 연(淵), 제(堤)
미국지명위원회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내륙 수면'을 호수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호수를 가리키는 54개의 다른 말들도 인정하고 있다. 오리건 주와 텍사스 주에서 볼 수 있는, 좁은 지역 안에 듬성듬성 생겨나 있는 웅덩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차코(charco)가 있다. 유타 주에서 볼 수 있는, 내와 가까운 침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거즐러(guzzler)가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 북쪽 끝의 물은 특별히 미어(Meer)라고 일컫는다. 결국 호수와 못의 차이는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지명위원회의 로저 페인은 이렇게 말한다.
"매우 주관적이고 다분히 느낌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인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미국의 큰 못은 95개며 작은 호수는 1366개라고 한다.
우리 국어사전에 호수는 '땅이 우묵하게 들어가 물이 괴어있는 곳. 못이나 늪보다 넓고 깊음', 못은 '넓고 깊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있는, 호수보다 작은 크기의 곳'으로 풀이하고 있다. 결국 크기가 기준이 되는 셈인데, 어느 정도의 크기냐고 묻는다면 역시 대답이 궁해진다. 결국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지금으로서는 지명을 따를 수밖에 없다. 지명에 호(湖)가 붙으면 호수이고, 지(池)가 붙으면 못이다.
제(堤)는 인공으로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를 가리킨다. 다만 의림지의 경우 둑을 약간 쌓기는 했으나 원래 호수가 있었기 때문에 의림지(義林池)로 표기한다. 백두산 천지(天池)는 못으로 보지만 한라산 백록담(白鹿潭)은 못보다 작은 담으로 표기한다. 연(淵)은 담보다 더 작은 웅덩이를 가리킨다. (이재운 글. 우리말 백과사전)
난산/ 독배 - 옹암/ 독바위라는 뜻에서 나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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