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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호수행

파로호 6 [강원 화천군, 양구군](20220502-03) 비수구미[화천읍 동촌2리]

by 길철현 2022. 5. 19.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을 가진 비수구미(秘水九美)는 예전에 한 번 들르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입에 마을 주민이 아니면 차량 진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보고는 기분이 나빠서 들어가지 않았다(아마도 십몇 년 전쯤이었던 듯한데, 그 때 도로사정이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보다 더 열악했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번에는 그런 문구 대신에 '해당지역은 붕괴 위험지구이므로 해빙기 동안 출입을 통제합니다'라는 안내 현수막이 있었다. 들어가는 길은 좁지는 않았으나 비포장이었고, 산사태가 난 곳도 있어서 안전에 유념해야 하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몰랐던 사실을 또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이곳이 파로호이자 북한강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상하게도 파로호 전체를 북한강의 상류가 아니라 다른 지천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말이 잘 안 되지만 북한강은 화천 읍내 정도에서 끝이 난다고 믿었던 듯하다. 좀 더 조사를 해보니 북한강은 북한의 금강산이 그 발원지이다. 

 

비수구미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겠으나(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 특이한 명칭은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가 않는다. 순수 우리말 이름이 아니라 한자라는 점 때문에 살짝 아쉬움도 들지만, 그 뜻을 알고나면 더욱 흥미가 솟는다(그런데, 비수구미란 말이 비소고미가 발음하기 쉽게 변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럼, 비소고미는 또 무슨 의미인가?). 파로호의 큰 장점은 다른 무엇보다도 오염원이 없어서 어디든 물이 맑다는 것인데, 비수구미 지역은 주변 산과 어울려 더 푸른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쳐놓은 철책으로 호수를 조망하는데 방해가 따랐다.
산사태의 흔적

비포장도로를 한 이십여 분 나아가자 내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길이 물 속에 잠겼는지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이 길은 일 년 중 한두 달, 물이 가장 많이 빠졌을 때 드러난다고 했다).  여기 오기 직전에 차량이 몇 대 주차된 곳이 있어서 의아했는데, 다시 돌아가서 보니 그 지점에서 산길을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비수구미 마을에 닿는다고 했다. 

위의 인도교를 건너자 비수구미 마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이라고 해도 네다섯 가구에 지나지 않지만. 산길로 들어섰을 때 [웰컴투비수구미]이라는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와 그게 무언가 했는데, 2013년도에 KBS의 [인간극장]에서 이 마을을 한 가족을 중심으로 소개할 때 [웰컴투동막골]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비수구미 트레킹 코스와 함께 이 가족의 나물 비빔밥의 유명세로 비수구미는 오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이곳은 분명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왕궁을 건축하기 위해 사용되는 소나무 군락을 보호하고자 베어내지 말라는 표시로 금표를 인근 바위에 새겨서 표시한 것을 가리키는데 정작 이 바위는 보지 못했다. 나는 이 표지가 인근의 산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비수구미의 진정한 매력은 아마도 비수구미 계곡을 따라 14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비수구미 생태길일 것이다. 이 생태길의 출발지 혹은 종착지는 해산터널이었다. 14킬로미터라는 거리는 편도로도 긴 거리인데, 왕복을 한다는 것은 정말 무리가 따를 듯하다. 그래서 이 트레킹 코스는 개별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나는 이 길을 따라 십여 분 올라가다가 내려오고 말았다. 특별히 눈을 사로잡는 그런 풍경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계곡길이었다. 

 

다시 돌아나오니 한 부부가 산길을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몸집이 좀 있는 부인은 길이 멀고 험하지 않은가 걱정을 하길래 금방 마을에 도착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고, 또 비포장도로가 험할 것을 염려해서 차를 세우고 걸어오는 분들에게는 차를 몰고 가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라고 조언해 주었다. 얼핏 들렀다가 나오는 길인데도 비수구미 전문가가 된 듯했다. 

절벽 바위에 균열이 많이 가 위태롭다.

다시 460번 지방도로를 타고 평화로를 따라 구비치는 해산령을 힘겹게 올라 해산터널에 도착했다. 해산터널은 해발 700미터 높이에 1986년 당시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을 기념하여 1986미터 길이로 조성된 터널이었다. 개통 당시에는 최고 해발고도에 최북단, 그리고 최장 터널이라는 삼관왕의 영예를 누렸으나 지금은 다른 터널들이 그 타이틀을 나눠 가져갔다.  

[해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산(1157미터)
[전망대 쉼터]의 주인은 약초인가를 캐러 갔고, 정자 지붕엔 심심한 관광객들이 던져 올린 돌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