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중]
탁구는 농구와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던 운동이었다. 국민학교 오 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라켓을 잡은 이래 탁구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에는 방효준, 이종찬과 주로 탁구를 쳤다. 효준이는 중학교 삼 년 내내 같은 반이어서 쉽게 어울릴 수가 있었다. 그는 나와 실력이 비슷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게임에서 약간 앞섰던 것 같은데, 그는 또 자기가 앞섰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종찬이는 우리보다 실력이 좀 떨어져 5점을 접어주고 시합했다(보충: 이 당시는 11점 게임인 지금과는 달리 21점 게임이었고, 서브도 2개씩이 아니라, 5개씩 넣었다). 종찬이는 카운트를 제대로 못해 우리에게 타박을 많이 받았고, 또 우리랑 탁구 치러 가느라고 청소를 빼먹은 적이 많아 이 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도망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윤인섭이라는 애가 나의 탁구 파트너였다. 그는 드라이브 전형이었고, 나는 어설픈 수비수였다. 실력은 그가 한 수 위였으나 게임 전적은 내가 앞섰다. 우리는 학교 뒤에 있는 허름한 탁구장에서 주로 시합을 했는데, 이 때 게임비는 한 시간에 육백 원이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손님이 없으면 우리가 치고 싶은 만큼, 때로는 두 시간 넘게 치고도 한 시간 값만 내면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탁구만큼은 누구에게도 잘 지지 않는다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생각을 머릿속에 넣어가지고 있었다. 이 당시 내가 탁구를 친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고, 내가 다닌 탁구장이라는 것도 동네의 탁구장들이었기 때문에 탁구를 잘 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러한 나의 어리석음에 최초의 일침을 놓아 준 사람이 고등학교 동문선배인 정순교 형이었다. 1학년 2학기 때 나는 형이 있는 하숙집으로 옮겨 갔다. 자만심에 가득 차 있던 나는 탁구를 치러가기 전에 오만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결과는 어처구니없는 패배였다. 10점을 넘기가 힘들었다. 최초의 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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