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김 언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양 한 마리가 무릎을 꿇은 채 여자의 잠속을 절룩절룩 걸어다닌다 도끼에 찍힌 자국들이 헐벗은 사타구니처럼 드러나 있는 앵두나무 저 여자는 언제 죽을까 죽은 앵두나무 아래 죽을 줄 모르는 저 여자 미친 사내가 도끼를 들고 다시 등뒤에 선다 미래의 상처가 여자의 두개골 속에서 시커멓게 벌어진다 앵두나무 죽은 앵두나무 말라죽은 앵두나무 도랑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다.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민음사
(감상) 첫 번째 언술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나무는 죽었는데, 여자는 잠이 들어 있기 때문인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져다 주는 대비감이다. ‘여자의 잠속을 절룩절룩 걸어다’니는 양은, 여자가 꾸고 있는 꿈의 내용이리라. 그렇게 볼 때, 순진함의 대명사(블레이크의 <어린 양The Little Lamb>을 떠올려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는 이 양이 ‘무릎을 꿇은 채’ 절룩이는 이미지는 참혹한 것이다. 거기다 앵두나무는 도끼에 찍혀 그 자국들이 헐벗은 사타구니처럼 드러나 있다. 이 이미지도 참혹하다. (참혹극을 보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자는 왜 죽지 않을까? 앵두나무는 죽었는데? 화자는 이러한 의문으로 시를, 독자를 이끌어 간다. 도끼를 든 미친 사내는 전에 앵두나무를 찍은 사내이리라. 폭력, 섹스의 인자로서의 사내의 이미지. 이 사내는 급기야 여자의 머리마저 찍을 것이다. 이 시의 뒷부분은 무엇을 말하는가? 앵두나무를 둘러싸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반복되면서 강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앵두나무 죽은 앵두나무 말라 죽은 앵두나무.’ 검은 머리카락은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잠자는 여자도 종국에는 죽고 말았다는 말이리라. 김언희의 시는 하나하나 분석을 해보면 흥미롭다. 물론 시인의 의식의 흐름을 다 좇아가지는 못하지만. 이 시가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이리라. 나름대로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나에게 떠오르는 것은 삶의 참혹함과 욕망의 무서움 등이다. 이 시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김언희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그녀의 시가 의미의 전달 보다는 ‘강한 이미지의 제시’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그녀의 시는 받아들이기가 오히려 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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