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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책을 읽다

김태호 - 아리스토텔레스 & 이븐 루시드: 자연철학의 조각그림 맞추기. 김영사(2017/2007)

by 길철현 2023. 4. 13.

- 읽고 나서

화이트 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해일 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플라톤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이데아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플라톤이 그러한 결론에 도달한 당시의 정황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만, 나의 이해가 짧은 것 때문이 아니라면 그것은 구시대적인 사고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그토록 오래 그 지위를 유지해 온 것은 기독교 신앙과 부합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형상과 질료가 분리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더욱 잘 와닿으며 그런 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서양에 역수출한 이븐 루시드의 사고에도 공감가는 점이 많다.   

 

124) 이븐 루시드는 플라톤 사상의 핵심이 되는 이데아론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는 인간이 사물을 지각할 때 추상적 개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우리 세계의 바깥에 '이데아'와 같은 형태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물을 인식할 때 생겨나는 추상화된 개념은 인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닐 뿐이지 그 자체로 인지된 것이 아니며, 인지되지 않을 채 소멸되버릴 수도 있으므로 독립된 실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추상화된 개념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형상과 질료의 두 부분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들창코'라는 개념은 '짧고 들려 있다'(형상)는 개념과 '코'(질료)라는 개념이 합쳐져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생성과 소멸이 가능하다면, 관념이라는 것이 플라톤이 생각했던 것처럼 독립된 실체라고 보기는 더욱 어렵지 않은가? 이븐 루시드는 신학적으로도 플라톤의 인식론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이 더 옳다고 믿었다. 신이 사물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사물 하나하나의 개별적 속성을 모두 안다는 것이지(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 사물들의 보편적 특성을 알고 있다는 것(플라톤적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철학자들은 과학의 미발달로 많은 부분을 사고 작업, 즉 추론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베이컨을 비롯한 영국의 경험론적 방식이 오류를 줄이는데 기여한 측면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루시드 등 당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방법을 모색한 대가들이 이룬 업적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발췌

16) 이븐 루시드가 추구했던 것은 신앙심이 이성을 압도하지 않고, 인간의 마음 안에서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었다. 54) 플라톤은 이 세계가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상이므로 이 세계에 대한 경험을 쌓는 것보다는 기하학을 통해 직접 이데아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따로 떨어져 있는 질서란 없으며, 이 세계에 대한 경험을 쌓다 보면 그 뒤에 숨어 있는 질서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62) 아리스토텔레스는 네 가지 원소와 네 가지 성질을 구분함으로써 한 원소가 다른 원소로 바뀌는 현상도 그의 스승과는 다른 방식으로 멋들어지게 설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불을 지펴 물을 데우면 물이 공기(수증기)로 변한다. 플라톤은 이것을 물을 이루는 삼각형이 잘게 쪼개져 더 작은 삼각형의 원소(공기)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차갑고 습한 원소(물)에 뜨겁고 메마른 원소(불)을 더해주면 뜨거운 성질이 강해져서 물이 뜨겁고 습한 원소(공기)로 바뀐다는 식으로 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또한 찬물을 담은 그릇 표면에 이슬이 맺히는 현상은, 반대로 공기가 차가운 그릇 표면에 닿아 뜨거운 성질을 잃고 차갑고 습한 원소(물방울)로 바뀐다고 설명할 있었다. . . .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은 파르메니데스 이래 많은 이들을 괴롭혔던 '변화하면서도 항구적인 세상'이라는 문제에 깔끔한 해답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후 중세가 끝날 때까지 무려 1,500년이 넘도록 서양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물질 이론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 부분 특히 잘 볼 것]

73)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평가를 받아야 할 점은, 천문학적 관측 기록과 우주론적 통찰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83) 그의 운동 이론은 수학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여러모로 부정확한 것이었다. 또 그의 자연철학의 가장 큰 특징인 목적론도,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좋은 평판을 얻었지만, 중세 이후 학자들에게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91) 그[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이 사람들의 신앙심을 어지럽힐 뿐이므로 없애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더 이상 어떤 복잡한 이론도 필요하지 않고, 복음 이후에 더 이상 어떤 정확한 탐구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3) 이븐 루시드도 그리스 철학과 유일신 신앙을 조화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이븐 시나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븐 시나보다 합리주의적이었고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124) 이븐 루시드는 플라톤 사상의 핵심이 되는 이데아론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는 인간이 사물을 지각할 때 추상적 개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우리 세계의 바깥에 '이데아'와 같은 형태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물을 인식할 때 생겨나는 추상화된 개념은 인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닐 뿐이지 그 자체로 인지된 것이 아니며, 인지되지 않을 채 소멸되버릴 수도 있으므로 독립된 실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추상화된 개념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형상과 질료의 두 부분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들창코'라는 개념은 '짧고 들려 있다'(형상)는 개념과 '코'(질료)라는 개념이 합쳐져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생성과 소멸이 가능하다면, 관념이라는 것이 플라톤이 생각했던 것처럼 독립된 실체라고 보기는 더욱 어렵지 않은가? 이븐 루시드는 신학적으로도 플라톤의 인식론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이 더 옳다고 믿었다. 신이 사물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사물 하나하나의 개별적 속성을 모두 안다는 것이지(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 사물들의 보편적 특성을 알고 있다는 것(플라톤적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130) 이븐 루시드의 눈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이론은 계산을 쉽게 하려고 임시방편으로 지어낸 수학적인 허구일 뿐, 사물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134) 질료 없이 형상만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따라, 육신은 인간의 질료이고 영혼은 그 형상이므로 "사람이 죽고 나서 영혼만 남아 돌아다니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44) 13세기 무렵이 되자 철학자들은 자신감을 얻어 신학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 사회에서 신학의 가르침이 틀렸다고 선언할 간 큰 철학자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자보다는 철학자가 더 권위 있는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 슬슬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