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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탁구의 길 2

by 길철현 2023. 7. 16.

하고 많은 운동 중에서 왜 하필 탁구냐고?

그럼 왜 분단된 빈국의 독재자의 나라에서

그것도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나

지랄맞은 근친상간의 덫에 걸리어

오십육 년 하고도 구개 월의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라켓을 처음 잡은 그 순간부터

그냥 무작정 좋았다고 하면 안 될까?

탁구대 위에서 똑딱하고 튀는 공 소리가 좋았고

좀 더 늘어난 팔이 좋았다고?

술이나 담배보다, 섹스보다 마약보다, 게임보다 

그리고 공부보다도

찢어 죽이고 싶도록 좋았다고

미쳐 나자빠질 정도로 좋았다고

탁구라도 쳐야 견딜 수 있으니까

탁구의 길은 로마로 통하니까

아니, 사십오 년을 걸어온 길을 내팽개치고 

다른 길로 가는 건 개갈이 안 나니까

슬픔을 웃어젖힐 줄 알아야 하니까

니 똥보다 내 똥이 좀 더 굵으니까

빠른 눈, 빠른 발, 빠른 손을 갖고 싶었으니까

아무튼 죽이고 싶도록 좋았으니까

아무튼 죽고 싶도록 징그러웠으니까

 

어쨌든 탁구는 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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