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시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 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렇듯하게 꾸며주는 여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 오지가 있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배꼽." 창비. 2008(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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