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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재인폭포

재인폭포 1 - 인연의 시작(19970101)

by 길철현 2023. 8. 17.

고등학교 동창인 C와 K가 신년을 맞아 나들이에 나섰다. 서른을 훌쩍 넘긴 두 사내가 이렇게 같이 나들이를 나서게 된 것은 결혼한 지 육 개월도 안 돼 파경에 이르게 된 C가, 아직 미혼인 데다가 혼자 사는 K의 아파트를 임시거처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새해 첫날이라고는 하지만 ‘설날’이라는 명절이 한 달 뒤에 떡 버티고 서있어서, 사실 그냥 한가한 휴일에 지나지 않는 날.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차를 몰고 나서게 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뚜렷한 목적지도 없었다. 서울 부근을 드라이브 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식사나 하고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날의 날씨는 하늘이 하루 동안에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예측불허 변화무쌍 그 자체였다.

서울에서 출발할 무렵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동두천을 지나 소요산에 당도할 즈음에는 우박으로 변하더니, 거기다 돌풍마저 불어댔다. 그러다 점심 식사를 하려고 전곡에 차를 세웠을 때에는 햇빛이 쨍쨍 나더니만, 포천으로 해서 서울로 들어올 무렵에는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차가 못 다닐 정도나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봉고차 한 대가 과속하다가 그랬는지 어쨌는지 길가에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내친걸음이라고 했던가? 이날 두 사람은 3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북으로 내달렸다. 전곡을 얼마쯤 지났을까? 재인폭포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한 번 가볼까?”

“겨울에 뭐 볼 것 있겠어. 그냥 가지 뭐.”

“그런데, 폭포 이름이 왜 재인일까? 재인이 무슨 뜻이지?”

“타잔이 애인 제인하고 놀던 폭포였던 모양이지.”

“지랄하고 있네.”

그때까지 4차선이던 도로는 재인폭포와 연천을 지나고 나자 2차선으로 좁아졌다. 두 사람은 대광리, 신탄리를 지나 북으로 북으로 내처 달렸다.

“이쯤 왔으면 휴전선 부근까지 온 것 같은데.”

K가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잘 닦여진 포장도로는 끝나고 말았다. 아직 포장이 안 된 곳도 조만간 포장을 할 모양인지 공사가 진행 중인 듯 했다. 하지만 작업 중인 인부는 보이지 않았다. 더 나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산지 일 년 조금밖에 넘지 않은 새 차를 험하게 굴리고 싶지 않았던 K는 차를 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