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장내리 조소마을 큰 길에서도 제법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2년 여 동안 전 국토를 뒤흔든 동학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전봉준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평범한 토담이 둘러진 초가집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는 훈장으로 조용하게 살아가던 전봉준은 동학운동 기간 동안 놀라운 지도력과 전략으로 조직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농민군을 통솔하여 큰 성과를 거둔다.
전주성까지 점령하였던 농민군은 이후 외세의 개입으로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전봉준은 삶을 마감하였지만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당당함과 논리는 농민군의 대단한 전과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이들의 혁명 운동이 당시의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조직적인 활동이었음을 증명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당시 백성들의 마음은 전봉준을 아련한 파랑새에 비유하는 녹두가에 담겨 오랜 시간 동안 불려졌다.
1970년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전봉준의 생가는 동학운동 이후 관군에 의해 모두 불태워진 주변의 농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던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농민군이 되었던 백성 모두가 전봉준이고 녹두장군이었다.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생가를 둘러보자.
[네이버 지식백과] 전봉준 장군 고택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 생가의 의미가 사전적으로는 태어난 집을 의미하므로 이 소개글에 나오는 생가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탐방기] 황토현전적지와 동학농민혁명공원을 찾은 다음 멀지 않은 곳에 전봉준이 살던 고택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잘 가꾸어진 초가와 너른 마당은 전봉준의 집안 형편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전봉준의 이력을 살펴보면 몰락한 양반으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서당 훈장 일을 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가 조병갑의 횡포로 모진 곤장을 맞은 사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전봉준 단소]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선생고택지에서 약 500m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있다. 1954년 천안전씨 문중에서 제단(祭壇)과 비석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1994년부터 연차적으로 정비하여 유해가 없는 허묘(虛墓)를 조성하고, ‘전봉준장군운명시비’도 세웠다. 동학혁명 지도자인 전봉준은 1895년 3월 서울에서 처형되어 끝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비석에는 ‘갑오 민주 창의 통수 천안 전공 봉준 지단(甲午民主倡義統首天安全公琫準之壇)’이라고 새겨져 있다.
[탐방기] 전봉준 고택을 들른 다음 부근에 있는 단소도 들러보았다. 단소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시신을 찾지 못해 허묘를 짓고 제단을 세운 곳이라 단소라고 부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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