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낙하 중심지를 돌다가 이곳에 왔을 때는 개관 전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8시 40분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미 문을 연 상태였다. 8시 30분 개관으로 일찍 문을 여는 곳이었다. 나선형 통로를 따라 내려가니 추모 공간인데도 이곳 역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입장료는 200엔으로 비싸지는 않았다. 이 자료관은 원폭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1996년에 개관을 했다고 한다.
원폭 낙하 중심지에서 보았던 우라카미 성당의 벽이 이곳에도 있었는데, 이곳 원폭 자료관에 전시된 것은 복제품이었다.
이런 식기들은 당시 열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증언하고 있다.
주 전시관 옆의 다른 전시관에서는 수장자료전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어로만 되어 있어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사진을 많이 찍기는 했지만 사실 원폭자료관에는 그렇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15분 정도.
이렇게 평화공원 방문은 끝이 났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는지 두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난 지금 흐릿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해자 동시에 피해자인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들에 대한 감정이 양가적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 우리에게도 인기가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 "바람이 분다"가 우리나라에서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떠올랐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일본인'이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인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무수히 많은 전쟁들이 있었고,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는 전쟁과 내전이 진행되고 있다. 육십 해 가까이 살면서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는 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남북의 현재 대치 상태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여행기를 쓰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도 보고, 존 허시의 "히로시마"도 읽었다. 놀란의 영화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과학 기술이 갖는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면, 원폭 이후 살아남은 여섯 명의 시민을 추적하고 있는 존 허시의 작품은 당시의 참상과 이후 그들의 삶을 글로 재현해 내었다.
길지 않은 시간 지상에 머물다 한 점 먼지처럼 사라질 운명인데 그 동안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 중에는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즐거운 추억을 위해 떠난 여행인데 평화공원이 너무 무겁게 양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다.
기온도 온화하고 하늘도 청명하니 훌훌 떨쳐 버리고 이제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야 할 때.
돌아올 때는 대로가 아니라 뒷길을 따라서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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