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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일본 규슈 여행

일본 규슈, 나 홀로 6박 7일(15) - 닛폰이냐, 닛산이냐?(20231029)

by 길철현 2024. 1. 7.

여행기 첫머리에 썼듯 다소 갑작스럽게 규슈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2016년도 영국 여행에서 느꼈던 짜릿함을 다시 한번 체험하고 싶어서였다. 영문학을 전공해 익숙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직접 체험한 영국의 문화와 자연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자동차를 렌트해서 4일 동안 운전하면서 겪었던 일들 또한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와 반대로 좌측통행을 하고 운전석 또한 오른쪽에 있는 영국에서의 운전은 30년 경력자인 나를 순식간에 초보자로 만들었지만, 내비게이션도 없이 여행안내 책자에 실린 작은 지도에 의존하며 모험에 나선 탐험가처럼 위태로우면서도 신나게 영국 중부를 누볐던 것이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인 일본에서 차를 렌트해 달린다는 건 스릴 넘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후쿠오카에서 곧바로 렌트를 하지 않은 것은 반대방향 운전이 한편으로는 심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좌측통행 하나만 생각하고 과감하게 시도를 했는데, 당시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골목을 지나다 내 차의 왼쪽 사이드미러를 반대 방향에 주차해 둔 차의 사이드미러에 부딪히는 사고를 내었기에 부담이 없을 수 없었다(차의 왼쪽 부분에 대한 차폭감이 부족한 탓이었다). 

 

전날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도 마음 한 켠에서는 운전의 즐거움과 부담감이 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고에 대한 불안감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날 나가사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렌터카 회사가 있는지를 살펴보기도 하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새로 근무 중인 분에게 "렌터카 회사를 추천해 줄 수 있냐"고 영어로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이 분은 영어를 거의 못했고 "렌터카"라는 말을 알아듣기는 했으나 '호텔에서 왜 렌터카를 찾느냐'는 식으로 의아해하는 듯했다. 번역기까지 동원해 그분을 너무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아 방 안에 들어와 인터넷으로 방법을 모색하다 구글에서 'rent a car near me'(근처 렌터카)라고 쳤더니 근처에 여러 곳이 떴다. 이 중 닛산과 닛폰이 호텔에서 거리도 가장 가깝고 이름도 친숙해 두 곳 중 한 곳에서 빌릴 생각이었다. 

 

아침에 평화공원으로 걸어가면서 보니 닛산은 어제 내렸던 고속버스터미널 바로 옆 건물이었다.

닛산 렌터카

 

평화공원에서 돌아온 다음, 어젯밤에 먹다 남은 짠 KFC 치킨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10시 20분 경에 호텔을 나섰다. 먼저 가까운 닛산으로 갔더니 젊은 여성이 앞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장소도 협소하고 렌트할 수 있는 차량이 몇 대 안 돼 보여 일단 닛폰으로 향했다. 구글 지도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 길 건너편에 붉은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횡단보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꽤 많이 걸어갔다가 돌아와야 할 모양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평점은 닛산이 좀 더 높은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선택지가 많은 닛폰이 나을 듯했다.

닛폰 렌터카

 

꽤 먼 거리를 돌아서 들어가니 젊은 남녀 직원이 있었다. 여자 직원은 다른 업무를 보고 있었고 남자 직원이 나를 맞아주었다. 내가 영어로 "차를 빌리러 왔다"고 하자 그 직원은 표정이 어두워지는 듯했다. 이후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번역기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내가 "4일 동안 빌리려고 한다"라고 했더니, 그는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4일 동안 빌릴 수 있는 차는 없다"는 것이었다. 들어올 때 보니까 차들이 꽤 많이 보였는데 렌터카 회사에 차가 없다는 것이 잘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별다른 아쉬움 없이 다시 "닛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금 전에 보았던 닛산의 여자 직원은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고, 다행히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해서 렌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경차로 하고, 보험은 모두 보장되는 것으로 했는데 나중에 받은 안내 팸플릿을 보니 사고 시 추가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기름은 가득 넣은 상태이니까 주변에 있는 주유소에서 가득 넣어서 반납하고 영수증도 챙겨오라는 이야기도. 어쨌거나 다 합쳐서 4일 동안의 렌트 비용은 39,490엔. 경차라서 그런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24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것이라 일요일(10월 29일) 오전에 빌렸으니까 목요일(11월 2일) 오전에 반납을 하면 되는데, 나는 빌리는 날짜로 계산을 해서 수요일(11월 1일) 저녁에 반납을 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나중에 변수가 좀 생겼다. 그다음 안내책자에서 본 대로 고속도로 통행을 할 때 유용한 우리의 하이패스 격인 ETC(Electronic Toll Collection 통행료 전자지불) 카드도 신청했다(나중에 알고 봤더니 일본의 고속도로 통행료가 겁나게 비쌌다). 카드 대여료가 따로 330엔가 있었는데 직원이 깜빡 잊어 버려서 반납할 때 정산하기로 했다.  사고 발생 시 연락할 전화번호도 저장하고, 마지막으로 직접 차의 흠집도 점검했다. 

 

차는 한국어 서비스가 되는 내비게이션에다 후방카메라도 있어서 7년 전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직원 역시도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기는 힘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주의 안내문을 차 뒤에 부착해도 되는지 물으며, "Be Careful"(조심하세요)이라고 덧붙였다(이 주의문의 정확한 뜻을 몰랐는데 번역기로 확인해 보니 "외국인이 운전 중입니다"이다). 

4일 동안 나와 동반할 닛산 경차 마치.

 

뒷좌석에 배낭을 내려놓은 뒤 운전대를 잡으니 설레임과 긴장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7년 전이긴 해도 한 번 해 본 것인데,라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우회전해서 대로로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안내를 해주는 직원의 손짓과는 반대로 그대로 좌회전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덜 복잡한 길에서 조금이라도 예행연습을 더 해보려는 심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