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일본 규슈 여행

일본 규슈, 나 홀로 6박 7일(16) - 나가사키의 어느 한 골목길(20231029)

by 길철현 2024. 1. 7.

운전대를 잡은 나는 좌측통행이라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면서 초보자들이 그러하듯 일단 직진을 계속했다. 나카마치 로(中町通り)에서 카미마치 로(上町通り)까지 쭉 직전을 하다가 삼거리에서 앞차를 따라 드디어 우회전(우회전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앞차가 있어서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다)한 다음 다시 좌회전해서 34번 국도 시야쿠쇼 로(市役所通り)로 들어섰다 이제 대로로 나왔으니 이 대로를 따라 좀 달려야 할 텐데, 회전 깜빡이를 넣을 때 우리와 반대라고 계속 되뇌었음에도 실수를 했고, 거기다 잘못해서 와이퍼까지 건드려 와이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레버를 다시 조작해 보아도 속도만 좀 늦어졌을 뿐 멈추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계기판에 정체 모를 빨간 불까지 들어와 있었다.

 

초긴장 상태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다는 격으로 자동차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그야말로 대략난감이었다. 일단 좌회전을 해서 좁은 길로 빠진 다음 빈 공간에다 주차를 했다. 계기판에 들어온 빨간 불은 그 모양으로 보아 문 열림 경고 표시인 듯하여, 문 네 개를 일일이 점검해 보았으나 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아래위로 움직여 보아도 와이퍼도 멈추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키를 돌려 시동을 껐다가 켜보아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다시 렌터카 회사로 돌아가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낯선 차를 모는 게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압박감이 너무 심했다. 계속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다시 차를 몰아 이름 모를 좁은 길을 올라갔다.

 

차를 몰면서 와이퍼를 계속 조작하다가 약간 대각선 방향으로 꺾으니 그제야 와이퍼가 멈췄다. 한 가지 문제는 해결. 그렇게 좀 더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어떤 집에서 길 쪽으로 뻗어나온 관목의 가지에 차 왼쪽 편이 긁히고 말았다. 의식적으로는 오른쪽에 앉았으니 왼쪽 부분에 차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40년 가까운 운전 습관은 오른쪽 부분에 차가 있다는 당연한 가정을 떨치지 못한 탓이었다. 영국에서의 사이드미러 접촉 사고도 그 때문이었다. 급한 대로 배낭에서 러닝을 꺼내 닦았더니 다행히도 깊게 긁히지는 않은 듯 대체로 다 지워져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깐깐하게 트집을 잡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반대 방향 운전의 두 번째 원칙은 차 왼쪽 부분에 대한 차폭감을 잊지 않는 것이라 해야 할 듯.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르막을 계속 올라갔더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아졌다. 차를 세운 다음 내려서 조금 걸어가 보았더니 묘지가 나오고 계단이 있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후진을 해서 적당한 곳에서 차를 돌려 내려가야 했다. 후진 또한 만만치 않았다. 후방 카메라가 있었지만 차가 자꾸 왼쪽으로 붙는 느낌인데다 혹시라도 차를 긁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차를 세우고 재차 확인을 해보았다. 그때 아이 두 명과 함께 골목길을 올라오던 다소 몸집이 있는 여성이 "도움이 필요하냐"고 영어로 물었다. 올라오면서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거나, 아니면 차 뒷면에 부착한 주의 안내문을 본 모양이었다. 그녀는 여차하면 후진을 대신해 줄 태세였다. 그러나, 내 자존심이 그것까지는 허용할 수 없었다. 대신에 그때까지 해결하지 못한 계기판의 빨간 경고등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문 열림 경고등이 맞다"고 했다. "문은 다 닫힌 상태"라고 했더니, "트렁크를 체크해 보라"고 했다. 내 차의 경우 트렁크 경고등은 따로 있고, 또 트렁크가 열려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로 트렁크가 열려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를 연발했고, 영어를 잘하는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길을 올라갔다. 혼자 남은 나는 조심조심하면서 차를 돌려 무사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구글. 아스팔트가 끝나고 콘크리트 도로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후진으로 차를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70일 이상의 시간이 지나 세부적인 상황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온 정신을 운전하는데에 집중하느라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어 어떤 도로를 어떻게 달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날 밤에 아주 간략하게 수첩에 남겨둔 메모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구글 지도를 이리저리 검색해 보아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과 일치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실제 경로를 찾는 것은 포기하고 기억을 좇아 안갯속을 헤매듯 적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했는데, 운 좋게도 구글 거리뷰에서 위에 나오는 사진을 찾아내자 경로를 역으로 추적해 아귀를 맞출 수가 있었다. 몇몇 부분은 정황상 그랬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랬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