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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by 길철현 2024. 8. 23.

가진 것 하나도 엇지만

무명 바지저고리

흰 적삼에 검은 치마

맨발에 고무신 신고

나란히 앉아 있는 

머슴애와 계집아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착한 마음과 젊은 몸뚱이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이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곳마다

땅에는 온갖 꽃들 피어나고

지붕에는 박덩이 탐스럽게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히고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가득하네

팔을 꽉 끼고 함께 뭉치면

믿음직한 두 친구

뺨을 살며서 마주 대면

사이 좋은 지아비와 지어미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너와 나의 어버이

가진 것 하나도 없이 태어났지만

슬기로운 머리와 억센 손으로

힘들여 이룩한 것 많지 않은가

어느새 여기에 와 앉아 있네

우리의 귀여운 딸과 아들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118-119.

 

- 김광규의 시가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시도 그런 결을 따라가는데, 마지막 두 행이 반전을 보여준다. 이 시는 '건강한 인간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표제시임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