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입
김광규
맥주와 포도주는 물리지 않았다. 그러나
부르스트와 케제, 감자와 돼지고기, 닭튀김과 훈제 연어 따위에 넌더리 났다.
한국 식당이나, 때로는 교민 가정에서
고추장, 김치, 된장국, 불고기, 잡채, 생선구이 따위를
배불리 먹고 돌아와도
외국시 번역처럼
좀처럼 만족할 수 없었다.
조선오이, 알타리무, 새우젓, 물오징어와 먹걸치, 메밀묵과 찹쌀떡 따위는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창밖을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싶었다.
귀는 낯선 침묵에 피곤해지고
입은 아무리 떠들어도 적적하기만 했다.
김광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지만]. 문지. 1998. 13.
- 산문적인 이 시는 타국살이에서 오는 향수를 표현하고 있는데, 미각과 청각이 교란되고 뒤섞이는 부분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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