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하나도 엇지만
무명 바지저고리
흰 적삼에 검은 치마
맨발에 고무신 신고
나란히 앉아 있는
머슴애와 계집아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착한 마음과 젊은 몸뚱이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이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곳마다
땅에는 온갖 꽃들 피어나고
지붕에는 박덩이 탐스럽게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히고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가득하네
팔을 꽉 끼고 함께 뭉치면
믿음직한 두 친구
뺨을 살며서 마주 대면
사이 좋은 지아비와 지어미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너와 나의 어버이
가진 것 하나도 없이 태어났지만
슬기로운 머리와 억센 손으로
힘들여 이룩한 것 많지 않은가
어느새 여기에 와 앉아 있네
우리의 귀여운 딸과 아들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118-119.
- 김광규의 시가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시도 그런 결을 따라가는데, 마지막 두 행이 반전을 보여준다. 이 시는 '건강한 인간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표제시임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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