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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시/영국시

A. E. 하우스먼 - 가장 어여쁜 나무(A. E. Housman - The Loveliest of Trees)

by 길철현 2024. 8. 26.

 

가장 어여쁜 나무, 벚나무가

부활절의 흰옷을 입은 듯

가지마다 만발한 꽃을 달고

숲 속 승마로 따라 늘어서 있네.

 

이제 내 칠십 평생에

스물은 다시 오지 않으리.

일흔 번의 봄에서 이십을 빼면

오직 쉰만이 내게 남을 뿐.

 

만발한 꽃을 바라 보기엔 

쉰 번의 봄도 잠깐 동안.

가지마다 눈을 단 벚나무 보러

숲을 돌아돌아 나는 가리니.

 

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

Is hung with bloom along the bough,

And stands about the woodland ride

Wearing white for Eastertide.

 

 Now, of my threescore yeats and ten,

 Twenty will not come again,

 And take from seventy springs a score,

 It only leaves me fifty more.

 

Ans since to look at things in bloom

Fifty springs are little room.

About the woodlands I will go

to see the cherry hung with snow.

 

- 약간의 분홍 색조를 담고 흰 꽃을 나뭇가지 전체에 한꺼번에 피어 올리는 벚꽃은 그야말로 봄의 한 순간 우리 눈을 황홀하게 한다. 또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에 나오듯 바람에 휘날리며 눈처럼 떨어져 내리는 벚꽃 또한 장관이다. 하우스먼은 이 벚꽃의 아름다움을 '가장 어여쁜 나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짧은 12행의 시에서 시인의 시선은 벚꽃의 아름다움보다는 '부활절의 흰옷'이나 '눈'(snow)이라는 비유에서 드러나듯, 그 아름다움의 짧음이나 덧없음에 더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더 나아가 시인은 쇼펜하우어처럼 미의 관조만이 이 덧없는 인생을 살만하게 한다는 생각도. 이 시가 발표된 것은 1896년도인데 하우스먼의 염세주의적 세계관이 세기말의 풍조로 증폭된 감도. 2연은 전체가 숫자를 통해 지나가버린 시간과 남아있는 시간을 대비하고 있는데, 스무 해를 산 사람이 살 날이 쉰 해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탄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다(일흔 해를 산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하우스먼이 평균 연령 정도를 생각하는 건 그나마 낙관적인 견해라도 해야 할 것이다. 또 현재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이때보다 10년 이상 늘어서 스무 해가 지나갔다면 육십 해나 남은 것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