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김광규
낡은 혁대가 끊어졌다
파충류 무늬가 박힌 가죽 허리띠
아버지의 유품을 오랫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던 셈이다
스무 해 남짓 나의 허리를 버텨준 끈
행여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물에 빠지거나
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던 끈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나의 허리띠를 남겨야 할
차례가 가까이 왔는가
앙증스럽게 작은 손이 옹알거리면서
끈 자락을 만지작거린다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문지. 14.
- 계속 이어나갈 전통을 낡은 혁대에 빗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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