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후로
아열대가 되어 버린 한반도
바퀴벌레 또한 아열대로 진화하여
좀 뻥을 치자면
내 머리통만해졌다
인기척에 놀라
서랍장 아래로 숨어드는 놈보다
내 심장은 더욱 벌렁거리고,
놀란 가슴을 뒤로 하자
내 아비를 죽인 원수라도 되는 양
솟구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밀대로 이리저리 쑤신다
피하다 못한 바퀴벌레는
다시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재빨리 밀대 끝에 달린 넙적한 부분으로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강력하게 압사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응용 총검술 자세
길다란 한 쌍의 더듬이
털 달린 여섯 개의 다리
단단한 껍질
피도 흘리지 않고 죽은 저 놈은
인간과는 무관한 종족이다
보이는 즉시 사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 놈의 바퀴 뒤엔
보이지 않는 수 만 마리의 바퀴
어떤 미친 놈처럼
깨물어 씹을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식량난에 부딪혀
양갱으로 만들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저 놈이 좀더 커지면
인간을 죽이는 것밖에 모르는
에이리언이 되고 말리라
아무리 해도 죽일 수 없고
설사 죽인다 해도 다시 살아나는
바퀴벌레가 내 뇌를 파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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