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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바퀴벌레

by 길철현 2024. 9. 5.

이상 기후로

아열대가 되어 버린 한반도

바퀴벌레 또한 아열대로 진화하여

좀 뻥을 치자면

내 머리통만해졌다

인기척에 놀라 

서랍장 아래로 숨어드는 놈보다

내 심장은 더욱 벌렁거리고,

놀란 가슴을 뒤로 하자

내 아비를 죽인 원수라도 되는 양

솟구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밀대로 이리저리 쑤신다

피하다 못한 바퀴벌레는 

다시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재빨리 밀대 끝에 달린 넙적한 부분으로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강력하게 압사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응용 총검술 자세

길다란 한 쌍의 더듬이

털 달린 여섯 개의 다리

단단한 껍질

피도 흘리지 않고 죽은 저 놈은

인간과는 무관한 종족이다

보이는 즉시 사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 놈의 바퀴 뒤엔 

보이지 않는 수 만 마리의 바퀴

어떤 미친 놈처럼

깨물어 씹을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식량난에 부딪혀

양갱으로 만들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저 놈이 좀더 커지면

인간을 죽이는 것밖에 모르는

에이리언이 되고 말리라

아무리 해도 죽일 수 없고

설사 죽인다 해도 다시 살아나는

 

바퀴벌레가 내 뇌를 파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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